2023/12/09

대전 생활 1년

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익숙해져 가는 생활이다.

천진시절 - 한 사람의 담담한 성장이야기

 

천진시절
저자: 금희
출판: 창비 (2020년)


색다른 느낌의 주인공이 있는 한국소설이다.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이 마치 한국인 같으나, 사실 한국인은 아니라, 중국인의 삶이 담겨있다. 중국인인 조선족 젊은이가 문호개방으로 급변하던 당시 중국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시대를 담담하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잔잔하면서도 책을 덮은 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을 읽게 되어 반가운 소설이기도 하다.

= 내용 =
90년대 후반의 중국은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던 시기다. 주인공도 비슷한 이동을 하게 되는데, 급변의 시기이듯, 뜻하지 않은 기회로 이동하게 된다. 그것도 약혼과 함께. 같은 동네 청년과 함께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젊은 남녀를 보낸다는 생각에 주인공의 부모는 둘을 약혼시켜버린다. 주인공은 조금 얼떨떨하게, 선택이라기 보다는 주어진 일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한 자세로 모든 일들을 치러낸다. 약혼도, 도시로의 이사도, 첫 직장에서의 약혼자와의 동거도, 그와의 첫 관계, 그리고 첫 직장생활도...  본인의 주도적인 선택도 아니고, 깊은 고민도 없다. 고민할만한 다른 선택지가 우선 주인공에게 없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아는 것도 없다. 주인공은 큰 고민없이, 주어진 하나의 길을 묵묵히 간다는 듯한 느낌으로 사는 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모습의 주인공에게 도시에서의 생활은 하나씩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네가 꼭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는거야"라고 가르쳐 주는 듯하다. 나와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되는 주인공은 드디어 본인의 주체적인 선택을 한다. 혼자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서 면접을 보고, 그렇게 사랑하던 것도 아닌 약혼자를 떠난다. 그 선택은 주인공을 엄청난 사람으로 만드는 그 무엇도 아니였다. 단지, 주인공은 담담하게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였다.
===


소설은 진부하게 한국의 핏줄이라든가 문화를 찾는 뉘앙스가 전혀 없다. 한국어를 아는 중국인인 젊은이가 주인공일 뿐이다. 한국어를 잘하기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서 직장을 찾을 수 있던 90년대 후반 중국청년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신선하다. 

내용도 서술의 흡입력도 괜찮았다. 다만 소설의 표지는 왜 이렇게 못만든 것일까-아쉬운 디자인이다.

(소설의 표지)

2022/03/20

키루나의 채운 Iridescent clouds over Kiruna

파스텔톤의 다채로운 색이 구름의 일부분에 나타나는 현상을 채운이라고 한다. 햇빛이 작은 구름입자들 각각에서 반사를 일으키고, 반사된 빛들이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켜 나타나는 색의 다채로운 변화라고만 알고 있다. 채운이라는 현상을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한국에 있던 때 사실 채운을 직접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나만 못 본 현상은 아닌모양이다. 자주 볼 수 없는 현상이니, 옛날 아주 옛날 하늘의 기운을 읽는다던 이들이 "채운이 나타나니,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징조"라는 식의 해석을 할 수 있었으리라.

이렇게 이름만 알았지, 몇 번 본 적없는 채운. 이런 채운을 극권인 키루나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극권의 성층권 구름이 채운의 효과를 톡톡히 발휘해서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더불어 극권 성층권 구름이 하늘을 다 뒤덮고 마침 해가 뉘웃뉘웃 져버리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채운이 발생해서 오로라에 버금가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나는 사진으로만 봤다). 

날씨 좋은 하루였던 오늘, 나는 드디어 작은 규모의 첫 극권 채운을 봤다.

(Iridescent clouds over Kiruna, Sweden)

2022/03/06

키루나에서 오로라 사진찍기 Photographing aurora in Kiruna

= 오로라 사진찍기 두 번째 실전 = 
아래의 사진들은 살짝 긴 노출시간만 준 것으로
그 어떤 필터나 색감 조절등이 전혀 안 된 "날 것"이다.

오늘은 유난히 춥지 않은 밤이었고(영하 10도 근처), 하늘은 맑고, 오로라는 강했다.




(초록색 오로라가 가장 흔하고, 붉은색과 파란색-보라색 오로라도 종종 발견된다고 위키피디아 페이지가 설명하고 있다.
혹시 저 오른쪽 아래 1/4지점도 아주 약간 보라색은 아닐까?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산소원자들이 붉은 색을, 질소원자이 초록색을 발광하는데, 붉은 색이 더 높은 고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푸른색-보라색도 질소원자들의 영향이라고 한다.) 





(아주 옅은 구름이 오로라와 나 사이로 끼여들고 있다.)





(키루나 교회와 오로라)





넘실거리며 몇 분 사이로 빠르게 모양과 크기가 변하는 오로라는 어느 순간에는 한 곳에서만 부분적으로 발광하기도 했고, 바로 뒤이어서는 전 하늘을 초록색으로 뒤덮기도 했다. 이런 밤하늘의 조용하고 빠른 변화를 옛 극권의 원주민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지금이야 지상뿐 아니라 위성들을 이용해서 관측도 하고 (다른 행성의 오로라도 관측하는 시대), 지구 자기권과 태양풍활동과 관련해서 시뮬레이션까지 이뤄지다보니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aurora oval)의 크기와 형태는 물론 세기까지도 어느정도 예측이가능한 모양이다. 나야 자기권 연구에는 전혀 신경써보지 않았던 터라, 어떤 문제점들이 최근 연구되고 있는지까지는 모른다만.. 분명한 것은 글로만 보던 오로라에 대한 설명보다 오로라를 한 번 보는 것이 오로라에 대한 궁금증을 훨씬 증폭시킬 것만큼은 확실할 것 같다.

오로라를 잘 보기 위해서는 키루나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들로 나가는 것이 최고다. 허나 차가 없으면 이 밤중에 돌아다닐 수가 없다. 나는 다행히 걸어서 5분 거리인 근처 교회공원 뒷 편이 어두운 편이라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022/02/27

극권의 개썰매 몰기 (Being a musher)

춥고 어두운 이 척박한 극권에 도대체 키루나라는 도시가 어떻게 발생해선, 2.2만명(2019년)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있을까? 이는 간단한 해답을 갖고 있다. 바로 지하자원이다. 이미 수세기 전에 철광산의 존재가 알려졌었으나, 키루나는 쉽게 일하러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였다. 19세기 말이되어서야 철광채굴 비용이 절감되는 기술이 마련되고, 철로가 연결되면서 키루나의 철광산업이 부흥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로 키루나는 유럽내 최대 철광생산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철광업을 제외하면, 키루나 시의 두 가지 좀 더 작은 규모의 중요사업들로는 우주연구와 관광사업이 있다. 우주연구가 바로 우리를 키루나에 오게 만든 이유이고, 관광산업은 겨울철 극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생활과 자연의 볼거리를 파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춥고 어두운 키루나의 겨울에 도대체 무엇을 관광하러 오느냐면, 뭐니뭐니해도 오로라를 보기위해 오는 관광객이 많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스포츠 활동들도 있다. 예를 들면, 크로스컨트리 스키, 개썰매, 스노우모바일, 빙벽등반 등을 하기위해 키루나에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관광지답게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면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 등등 스웨덴어 이외의 언어들이 들려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나 역시, 키루나 생활 첫 달이니만큼, 키루나의 겨울특색을 제대로 누려보기 위해 개썰매몰기에 나섰다. 다양한 개썰매 관련 활동들 중에서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2명이 한 조를 이뤄서 번갈아가며 개썰매를 모는 활동이였다. 낮시간대에 따뜻한 점심이 포함되어 있으니, 혹시라도 추우면 중간에 몸을 녹일 수 있는 시간이 있어보였고, 무엇보다도 내가 개썰매를 몰아보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이 큰 기대를 품게 했다. 피곤함없이 개들과 놀 수 있는 조건이라니!

우리가 선택한 개썰매 업체는 키루나에서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서, 덕분에 우리는 드디어 키루나 시 밖으로 첫 나들이(?)를 나가는 셈이였다.

나름 따뜻하게 중무장하고 갔으나, 업체에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옷과 신발, 그리고 장갑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개들이 신발에 오줌을 지릴 수도 있고 땅에 싼 똥을 쉽게 밟을 수 있어서라고 하니,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어떤 개들은 양말을 신고 있다.
투어전 개들의 발의 상태를 확인해서 양말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하 30도 이하의 날씨의 경우엔 모든 개들이 양말을 착용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개썰매를 조종하는 법에 대한 레슨을 듣는 동안, 썰매당 5마리의 개들이 배당되어 자리를 잡아 기다린다.


(나긋나긋 졸음이 오는 듯. 마치 한여름에 일광욕하는 듯한 모습이구나.)

(오드아이였던 메리제인.
결코 사진에 쉽게 응해주지 않아서 결국 이런 이상한 표정 밖에 못 찍었다.
썰매가 멈출 때 마다 발라당 눈밭을 뒹굴고, 투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쓰다듬을 요구하던, 사랑스런 썰매개)

오늘의 정오 개썰매 투어팀은 총 4쌍이였다. 가장 먼저 가이드가 눈상태를 확인하며 개썰매를 몰고 나서면, 차례로 개썰매를 몰고 따라 나섰다.








개썰매를 처음 몰아보며 놀란 것은 개들의 "힘"이였다. 썰매위에서 보니, 개들이 총총총 매우 가볍게 산책하듯 뛰는 것에 첫번째로 놀란다. 이런 총총걸음에 성인 두 명이 탄 썰매가 순식간에 끌려간다건 놀라운 경험이였다. 그리고 개들의 달리고 싶은 본능에 두번째로 놀라게 된다. 마구마구 달려나가고 싶어해서, 얘들을 말려야한다(!). 썰매를 모는 사람이 브레이크를 밟아서 개들의 질주본능을 저지시키지 않으면, 초기의 흥분에 마구 달려버려서 나중에 집에 돌아올때는 지쳐버린다는 거였다. 앞 썰매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잠깐이라도 썰매를 멈추면 개들은 아주 잠깐은 기다려줄지 몰라도 조만간 마구 불평을 퍼부어댄다. "아우~!!! 아우!아우!" 소리로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것이였다. 마치, "왜 안가! 좀 달려야지! 심심해!"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듯한 상상에 빠져버린다. "Let's go!"라고 아우성치는 얘들을 출발시켜야 드디어 조용한 눈경치로 되돌아간다.

맨 앞에 달리는 가이드의 썰매가 눈길을 다져줘서, 뒤이어 달리는 썰매들은 나름 쉽게 달릴 수 있다. 사진으로는 썰매길 옆의 눈 높이가 쌓인 눈의 전부같이 보인다만, 썰매로 다져지지 않은 길 가장자리에 서면, 순식간에 무릎 혹은 허벅지까지 눈속에 파뭍혀버린다. 





우리는 운좋게 눈내리지 않는 날이어서 저 멀리 스웨덴의 가장 높은 산(2000m를 넘으니, 한라산보다 약 100m 더 높다)도 볼 수 있었고 햇빛에 일렁이는 상층운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만 강풍과 갑작스런 heat wave에 영상 4도까지 날씨가 따뜻해진 날씨였다. 이런 갑작스런 상온의 날씨엔 눈이 질퍽해져서 개들이 썰매를 끄는데 더 고생을 한다고 했다.

약 2시간의 썰매타기를 마치면, 우리는 가이드에게 배운대로 개들을 한마리씩 썰매에서 풀어주며 마사지를 해줬다. 하나씩 앞다리에서 등을 거쳐 뒷다리까지 만져주며 "잘했어! 힘쎄네! 잘생겼어!" 알아듣든 말든 칭찬을 퍼부어줬다. 얘들은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참 기분좋아하며 쓰다듬을 즐긴다. 근육질의 몸을 내 무릎에 기대니까 썰매를 끌던 힘의 근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오드아이인 메리제인은 자기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쓰다듬을 즐겨서 어찌나 귀엽던지-.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개였다.

(썰매 투어를 마치고 쉬는 개들)

썰매개들을 모두 집으로 들여보낸 뒤에는 '티피'라고 불리는 사미족의 텐트안에 따뜻한 화롯불 주변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따뜻한 장소에서 토마토 치즈스프와 polar bread cheese sandwitch, 방금만든 커피와 시나몬 롤까지 먹고나면 몸도 뱃속도 든든해진다. 따뜻해져서 여몃던 겉옷을 느슨히 열며 가이드와 관광객들은 이야기잔치를 만들었다. 스톡홀롬에서 온 관광객부부, IKEA의 IT팀에서 일하는 인도인 4인 친구무리들과 영국에서 노르웨이를 거쳐 관광중이라는 커플까지. 두런두런 키루나 혹은 스웨덴 경험을 이야기한다. 여행을 많이 한 느낌을 뿜뿜하던 스웨덴 부부에게도 키루나는 신기한 장소라고 하니. 하하하! 우리가 정말 외진 곳에 온 것은 확신한 셈이다.

(점심까지 마친 뒤에는 puppy들 우리에 들어가서 질컷 강아지들을 귀여워해줄 수 있다.
저 말썽꾸러기가 뭍어나는 눈빛을 보라!
꾸부리고 앉아서 쓰다듬던 사이에 몇몇 애들이 뒤에서 내 포니테일머리를 물어당겨 고무줄이 끊어져버렸다.
그럼에도 어쩌랴. 사랑스럽게 포동포동 걸어다니는 - 그 누구도 거부못할 귀여움이다.)

2022/02/23

키루나에서 본 첫 오로라


키루나가 북극권(Arctic Circle)안에 들어있는 도시이다보니, 지리적으로 희귀한 자연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겨울이면 해가 하루종일 뜨지않는 극야와 여름이면 해가 하루종일 지지않는 백야현상이 발생한다. 2월말인 지금은 딱 극야와 백야 사이의 절반정도이다보니, 해가 뜨는 시각이 하루 하루 빨라지는 것을 실감한다.
밤하늘을 보면 깜짝 놀란다. 작은 곰자리와 북극성이 거의 머리 꼭대기 근처에 위치했다! 내가 알던 저위도-중위도와는 전혀 다른 지구의 위치에서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극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현상은 바로 오로라가 아닐까. 

값싼 교통편 없이 추운 극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니, 아무래도 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쉽게 보러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셈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일이다. 어쩌다가 출장이라도 가거나 파견근무라도 나가게 될지! 꼭 아주 나중에, 돈 많고 시간 많은 은퇴한 뒤에만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테니까. 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살아있는 동안 보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에는 오로라가 항상 자리잡아 있었다. 

그리고 그 "혹시나"는 정말이 되었으니! 

뜻하지 않게 키루나에 온 덕분에 나는 드디어 소원성취할 기회를 잡은 셈이기도 했다.

(저 둥근 가로등들이 운치는 줄지 몰라도, 광공해의 원흉이다)

다만 멋지고 강력한 오로라를 보기위해서는 맑은 밤하늘과 강력한 태양활동이 함께 필요하다.내가 아무리 극권에서 매일 밖에 나가 기다린다고 한 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오로라는 볼 수 없다.

안타깝게도 키루나의 하늘은 대체적으로 구름이 잔뜩 끼거나 끊임없이 눈을 내렸다. 또한 키루나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광공해가 엄청났다. 텅 빈 거리의 불필요한 불빛때문에 약한 강도의 오로라 빛은 광공해에 다 가려져버리고 마는 거다.

(조명 덕분에 반짝이는 눈)
 
(눈이 사진을 찍던 이 당시에도 많이 왔다만, 지금은 더 많이 쌓여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피곤해서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린 날이 있었다. 아아....! 강력한 오로라가 아주 잠깐 자정의 하늘을 아름답게 비췄다며 지인이 집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도시의 광공해에도 보란듯이 밝은 오로라의 모습이라니! 3년 전에 키루나에 왔다는 지인의 말로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강한 오로라였다고 한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의욕충만해져서 매일 두 개의 오로라 예보앱과 근교의 무인카메라 사진을 살펴보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선명한 초록의 굴곡진 빛이 키루나 도시 하늘위로 펼쳐진 것이였다. 나는 준비된 카메라를 들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수 백 미터만 걸어가면 교회공원에 도착하는데, 시내 중심보다 훨씬 어두워서 오로라보기에 훌륭한 장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나의 오로라는 초록색이였다.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밤 하늘 절반을 가득 뒤덮더니, 조만간 사라지고. 다시금 넘실넘실 파도치듯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빠른 모양, 크기, 밝기의 변화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자태였다. 저 자태가 100키로미터 고도 이상에서 나타나는 일이라니...!  약 30-40분정도를 영하 20도이하에서 장갑도 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손이 곧 아려왔다. 결국 오래 밖에 있지는 못하고 따뜻한 실내로 돌아왔다만, 드디어 오로라를 보았다는 흥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초록색 오로라가 가장 흔하게 관측되는 색이라고 한다. 붉은 색과 푸른색 오로라도 아주 가끔 발생한다고 하니, 다른 기회에 어쩌면 다양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내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의 일부분)

안타까운 것은 광각렌즈가 없는 바람에 내 카메라로는 오로라의 정말 일부밖에 담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였다. 오로라의 밝기는 생각보다 밝아서, 삼각대 없이 핸드폰 카메라로도 문제없이 잡힐정도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와 키루나 성당)


 

2022/01/30

스웨덴 최북단 도시, 키루나 Kiruna의 코로나 대응: 2년만에 보는 마스크 없는 세상

 2022년 1월 말인 현재, 각 유럽국가들이  급속하게 번지는 오미크론에 나름의 코비드 대응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가 오미크론의 낮은 중증도에 봉쇄를 전면 해제한 반면, 독일의 경우에는 G2+라는 강화된 코비드 대응책을 1월부터 시작했다. 2G+란, 부스터 백신완료자, 혹은 급속 테스트에서 음성결과를 보유한 2차 백신 완료자/코비드완치자만 식당이용이나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정책이다. 아무리 각 국이 다른 정책을 펼친다고는 해도, 쉥겐정책만큼은 유럽내에서 지켜지다보니 EU 코비드백신 접종확인서가 있다면,  대부분의 EU 나라들 사이를 다니는 것에는 큰 무리는 없다. 

다만, 스웨덴을 비롯한 일부 EU국가들의 경우는 좀 달랐다. 스웨덴은 입국조건을 12월 말부터 강화했다. 스웨덴 국민이나 거주자가 아닌이상, EU 코비드백신 접종확인서는 인정하지 않고 입국전 2일 이내에 이뤄진 코비드테스트 음성결과를 반드시 제시해야만 입국을 허가했다. 이로인한 부작용은 당장 많은 수의 방문객들이 퇴짜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부스터샷이 오미크론 증상을 완화시키기는 해도 오미크론의 전파를 멈출수는 없는 것이 점차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음성결과를 제시하지 못하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던 모양이다. 결국 스웨덴정부는 1월 21일부터  강화된 입국허가조건을 갑작스럽게 취소하고, EU 코비드백신 접종확인서만 있으면 입국이 가능하도록 바꿨다.

생각치 못한 입국조건 변화에 나의 스웨덴 입국도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새로운 스웨덴 입국정책덕분에 원래 계획에서 일주일만 늦어져서 스웨덴 입국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도착한 스톡홀롬 공항은 독일과는 많이 다른 코비드 대응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까다로웠던 일주일 전까지의 입국조건과는 달리, 실제 스웨덴 공항은 코비드에 매우 너그로운 분위기였다!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들만 줄창 마스크를 착용할 뿐, 대다수의 스웨덴 공항직원들은 마스크없이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공항 내에서 울려퍼지는 "마스크를 착용하세요"라는 녹음된 안내방송은 공허한 배경잡음처럼 지나갈 뿐이였다.

스웨덴은 2년 전 초기 코로나 대응에 미온적이었다. 위험도를 낮춰본 까닭에 안타깝게도 유럽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고령자의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스웨덴 정부 스스로도 초기대응의 실패를 수긍할 정도였다. 다만 오미크론 대응은 위에서 말했듯 강한 입국조건을 내걸며 뭔가 강화된 대응을 보여주는 듯 싶었는데 이는 스웨덴 밖으로만 보여지는 측면인 듯 싶었다. 정작 스웨덴 공항 내에서는 마스크 착용자가 소수에 불과했다.

나의 최종 목적지인 키루나는 스톡홀롬 공항보다도 훨씬 더 코로나에 너그러운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식당과 카페들은 접종확인서를 보여줄 필요도 없이 모두 마스크 없는 실내 생활이 이뤄지고 있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눈축제의 실내 공연들에는 EU 코비드 백신접종확인서만 보여주니, 마스크 없이 착석이 가능했다. 와우. 2년만에 보는 마스크 없는 세상을 스웨덴에서 목격하고 있다. 마스크에 아파지던 귀를 키루나라는 작은 도시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풀어준다. 2년만에 경험하는 코비드와 함께하는 생활인 셈이다.

2021/12/25

새로운 곳: 스웨덴 최북단 도시, 키루나로 가기 (준비)

블로그에 전혀 신경을 못쓰던 사이에 독일 베를린에서 이제 딱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한 달 뒤면 독일을 떠나 스웨덴 키루나로 옮길 예정이다. 내가 봐도 좀 갑작스럽다. 딱 1년 전까지만해도.. 살게될 곳이라고는 전혀 예상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다. 독일에서 스웨덴 최북단으로의 이사가 나름 유럽내의 이동이라고는 하지만, 2천키로미터의 여행길이다보니 국제이사 준비도 진행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짐쌓기만 남았다.

키루나라니!
Articl circle내에 위치한 도시로, 겨울이면 눈에 뒤덮여 해도 뜨지않는 기간이 한 달에 달하고, 영하 20-30도가 되는 지역이다. 처음 겪어볼 극지역 기후대라는 것은 힘들테지만, 내가 평생 꿈꾸던 것를 해 볼 기회가 오다니! 바로 내 눈으로 보는 오로라와 극권 채운이다. 영하 30도에서도 밖에서 1-2시간은 버틸 수 있도록... 나는 준비되었다.

2020/08/17

[Book] A Boy and His Dog at the End of the World by C.A. Fletcher

종종 방문하는 베를린의 미국기념도서관Amerika-Gedenkbibliothek은 어느정도 외국어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름의 연유인지, 단순히 근접한 영어생활권(영국)의 영향인지, 외국어책들 중 다른 유럽어들보다 영문책이 가장 많은데, 우연찮게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Eng.) A Boy and His Dog at the End of the World"
(세상의 끝에서 한 소년과 그의 개)

몇 페이지 읽다보니, 마음에 들어서 빌려서 읽어보게 된 책이되었다. 오랜만에 블로그를 재시작하는 기념으로 몇 자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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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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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배경은 영화(Eng) Children of men과 비슷하다. 자세한 연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어느 시기부터 임신이 불가능해져서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멸종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인류의 문명이 종말하고, 약 1세기 이후가 소설의 배경이다. 앞서 말한 영화보다 이후의 시대 정도로 상상이 가능할 듯 하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의 흡인력 중 하나는 위의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상상에 있었다. 인류가 멸종하고, 누군가가 인류가 남긴 것을 보며 어떻게 해석할까- 상상해보는 부분. 다행히도 문제는 좀 쉽다. 그 한 사람이 소설을 좋아해서 현대의 인류의 이야기를 읽기 좋아한다는 점인데, 책을 많이 읽던 이 인물은 그 덕분에 여행의 도중에 만나는 인류의 끊임없는 흔적들을 보고 쓰임새를 잘 알아챈다. 망가진 놀이공원, 탑, 자동차, 인터넷까지. 이 인물은 자신이 마주하는 정적과 폐허 속에서 자신이 소설에서 읽은, 도시 가득히 붐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낸다. 마주한 폐허가 너무 뚜렷해서 상상속의 사람들의 모습은 오히려 소름이 찌릿하게 올라오는 외로움을 실감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 폐허 속에서 주인공은 각각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유골들을 발견한다. 누군가는 슬프게,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 소중하게, 생의 마지막을 보낸 흔적들이 숨겨진 땅. 그러한 땅을 어린 주인공은 발견해나간다.

물론, 주인공은 목표가 있어서 여행을 한다. 바로, 도난당한 자신의 가족, Jess라는 개를 되찾기 위한 여정이다. 그러한 여정에서 주인공Griz는 인류의 폐허를 목격하고, 남겨진 흔적을 유추하며, 수 주를 걸어 결국 Jess를 찾는다. Jess를 쉽게 얻는 것은 아니였다. 우선, 본인이 죽을 뻔했고, 본인의 배를 잃어버리지만, 또 다른 개Jip을 잃어버리던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을 잃으키기도 하다. 자신이 마음을 열은 이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Jess를 찾아 떠난다는 선택을 하는 Griz. 이 모든 결과들의 원인은 'Jess를 찾는다'라는 단 하나의 목표였다. 이 하나의 목표가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고 얼키고 설키는 이야기들의 흐름이 바로 책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흐름은 좀 '어른들을 위한 해피엔딩 동화'같이 흘러가던 것이 아쉬웠다. 너무 해피엔딩...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감정들이 허무하다 싶을 정도의 해피엔딩이라 마무리가 좀 이상하다 싶었졌다. 그러나 책의 뒷표지를 읽으니, 책의 저자가 자신의 아이들과 개와 살고 있다는 소갯글을 보니 저절로 상상이 가능했다. 예를 들면, 저자는 나중에 자신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힘내기를 바라다보다-정도랄까.

소감을 요약하자면, 아이디어와 스토리 모두 좋은 편의 소설이다. 그러나 감정을 소모케한 해피엔딩이라 허무할 수 있다.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니, 단순하지는 않다.

2020/08/16

독일의 국내 여름휴양지, 동해Ostsee 뤼겐 섬Rügen insel (Eng: Baltic sea)

[Beebop: 독일이 기준이니, 독일 명칭 우선. 영문 이름은 Eng로 따로 표시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집에만 있은 지 수 개월이 지났다.
바쁜 와중이라 업무와 개인시간의 경계가 무너지기 쉬웠고, 결국 장시간을 일에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저번주 월요일, 문득 딱 쉬기 좋은 텀이 있음을 발견했다. 컴퓨터를 꺼놓고 있어도 문제가 없어보이는 그 몇 일!

나와 남편과 재빨리 휴가를 마음먹었다. 독일 국내의 여름휴양지로 유명하면서 베를린에서 3-4시간이면 기차로 도착할 수 있는 곳! 한 여름 베를린의 더위를 벗어날 수 있는 바닷가로 말이다.

(셀린Sellin 부둣가)

독일은 바다가 북쪽에 위치해서, 단순히 독일의 '북해'라고 부르기에 딱 좋아보인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덴마크를 경계로 동쪽/서쪽을 북해Nordsee/동해Ostsee로 각각 부른다. 
바다의 경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타당해보는데, 주의점이 있다. 여러 나라들의 집합인 유럽이라 어느 위치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도한다. 예를 들면, 독일의 동해는 큰 규모의 만과 같은 형태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럽으로 막혀 있는 '발틱해 Baltisches Meer'라 불리는 바다라고도 흔하게 불린다.

우리가 간 곳은 동해의 끝자락에 있는 뤼겐 섬Rügen insel이다.
독일에서는 가장 큰 섬이며 (52 x 41 km의 규모. 제주도의 절반 크기),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다. 동쪽이라는 위치로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동독에 포함되어 공산주의 시절의 휴양지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있는 셀린Sellin, 괴렌Göhren, 빈즈Binz 지역으로는 유명한 휴양지답게 여름별장/호텔/식당 등이 줄지어 있다. 그래서 사람사는 도시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편안함보다는 인위적인 '휴양마을'에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해변과 길을 걸으며 느꼈던 좋은 점이라면 다양한 나잇대의 관광객들이 균일하게 분포해서 여름바다는 모두를 위한 것이란 실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셀린과 괴렝 사이의 모래사장)

유럽내에서도 독일의 관광객들은 모래사장에서 그 독특함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그들 특유의 '영역표시'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 곳에서도 그 영역표시를 해서,
자신의 해변타올이나 그늘막 주위를 무릎높이의 가림막으로 빙 둘러싸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남편은 "네덜란드에서는 아이들이나 그렇게 하며 논다"며, 마치 '에휴~ 독일인들이란- ...'투의 말을 하는 걸 보며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30분정도 걸어서 한적한 해안에 자리를 잡았는데, 베를린이였다면 뜨거웠을 햇살이 훨씬 북쪽인 이 곳에서는 따듯하기만 하다. 바닷물은 놀라울정도로 짜지않고, 바닷가에서 수십미터를 걸어나갈 수 있을 만큼 모래둔턱이 넓게 분포했다. 바람에 파도가 높게 일렁일때면, 점프하며 파도를 넘기는 놀이에 푹 빠질수도 있다.

혹시라도 독일의 해안으로 여행오는 한국 여행객을 위한 팁이라면..
독일인들은 물가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듯 싶으니,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리는 것에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다 벗는 것은 아니고, 벗는 이들이 좀 있는 수준이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신경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겨우내내 햇빛을 못보는 사람들이니, 햇빛이 그렇게 좋은가보다-이해해주면 그만이다.

나는 이번이 누드비치를 처음 보았던 것은 아니라서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아직 의식하는 것을 보면 적응이 완전히 된 것도 아닌 모양이다.

(딜-오이소스 자가미구이정도로 번역이 될까?
오이소스는 나에게 식문화 충격이였다.
이 레스토랑은 우리의 연휴 최고 레스트랑으로 자리매김했고,
우리는 연휴 첫 날과 마지막날을 여기에서 식사했다.) 

동해근처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해수욕 다음이, 독일 내륙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맛있는 바닷물고기 식사! 운좋게도 나는 여기에서 유럽최고의 해산물식당을 찾은 것 같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해산물이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독일생활 6년만에 알게되었으니! 역시 사람은 여기저기 다녀봐야 그 나라를 알아가는 듯 싶다.

(괴렌의 한 호텔은 약 6층 높이의 타워를 관광객들이 무료로 다녀갈 수있게 해준다.
석양과 시간이 맞았다.)



주변으로 하이킹/사이클링/증기 기관차 시승이 가능하기에 여러가지 활동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뤼겐 섬. 역시나 유명한 여름휴양지다운 곳이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아마, 평소 여름이였다면 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해안가에 못생긴 주차빌딩이 우리 때에는 텅텅 비여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덕분에 아주 약간은 한적한 뤼겐을 만났던 것 아닐까-...

2020/03/07

1년 전, 일본을 떠나던 순간의 추억

일본에서의 6년의 시간을 2018년 말에 마무리 지었다.

어떤 일들이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고,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알지도 못하던 갈등의 시간이였다.
생활의 질답은 커녕, 일에 대한 이야기 상대조차도 전무했다.
나름 박사과정도 독립적으로 했었지만, 일본에서의 시간은 독립적인 것을 떠나, 무인도 같은 생활이였으니.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살려고 버티던 곳이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힘들던 곳에서 몇 명의 가까운 동료가 생겼고, 아주 약간의 친구가 생겼고,
점차 할 일이 늘어나선, 감당이 어려울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일 덕분에 지금까지도 계속 금성에 대한 일을 이어갈 수 있는 현실이 만들어지다니.

일본을 떠나기 전, '일본을 곧 떠나는데, 어떤 기분이야?'라는 질문을 종종 듣곤했다.
나의 대답은 항상 일관되었었다. '서운하거나 슬픈 것보다는, 복잡한 기분이야.'

어떤 단 하나의 느낌이 아니였다.
마음끓이던 갈등의 기억들이 아직 너무 생생해서 억울한 기분까지도 있었다.
가구들을 정리하며, 모았던 책들을 버리거나 도서관에 기부하고, 이삿짐 이외의 모든 것들을 쓰레기로 처리하던 - 모든 행위들이 마치 그동안 벌어졌던 마음의 상처들을 조금씩 다독이던 것 같았다.
6년간 지내던 작은 집을 깨끗하게 비우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큰 기분변화가 있던 것은 아니였는데, 사실 아주 약간은 후려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공항을 나서며 2년의 기한이 남은 비자를 반납하던 것도 기억난다.
공항의 직원이 '아직 기한이 많이 남았는데요?'라는 말에, '이제 떠나서 필요없어요'라고 나도 모르게 참 기쁘게 말했었다.

그렇게 일본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독일에 왔다.
옛날에 있던 곳은 아니고, 새로운 도시, 베를린에 왔다.

2018/03/20

누구에겐 작은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큰 보상

지난 글에서 7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난 주, 나에게 일본에서의 5년간을 보상받는 듯한 기쁜 일이 있었다.
엄청난 일은 절대 아닌, 매우 소소한 일이였으나, 나는 너무 기뻐서- 그 감격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인고 하면, 지난주에 있었던 위성팀의 정기 과학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였다.

위성팀의 정기 과학 회의에는 각 카메라팀의 정기적인 보고가 있다.
자외선 카메라팀에서는 3명의 주요 인물들이 정기보고를 해왔었다. 나는 자외선 카메라 팀원이기는 하나, 주요팀원으로 인정되지는 않았기에 이 3명에 포함되지는 않았었다. (발표된 카메라 논문에는 3번째 공저자지만, 정작 회의에서 내가 주요팀원으로 거론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낸 부분은 관측계획부분이나, 정작 위성팀장은 나를 (인식할 만큼의) 팀원으로 생각해주지는 않는 상태다.

오랜 시간 이렇게 지냈으니, 그러려니 하며 지나가는 것인데...
이번 정기보고에 자외선 카메라팀이 내 이름을 팀보고의 공저자로 명시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와와와왓!"
발표자료를 집에서 보고 있던 나는 얼마나 흥분했던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이자면, 이렇게 주요 팀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사람을 일본이외의 국적으로 내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정기회의를 무사히 끝내고, 나는 팀원으로 인정이 되어 너무 기쁘다는, 그런 내용을 메일로 전했었다.

그런데.. 답장이.. 나에게 격한 감격을 안겨줬다.
내가 일본에서 5년간 일하며, 그토록 직접 듣고싶어하던 그 말이 거기 있었다.

나는..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는, 이만큼의 시간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2017/08/10

내 2017년을 위한 생각

무거운 눈커풀을 뜨며 오늘은 짜증이 울컥 솟아오른다.
왜 굳이 삿포로까지 가서 반나절 회의를 하고 와야 하는 건지.
의미를 알지 못하는 팀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 건지.
피곤을 무릅쓰고 왜 내가 일을 함께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하는건지.
내가 참여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에 왜 굳이 내가 참여하고 있는 건지.

이 짜증에 대해 늦은 아침식사를 하며, 그리고 이 글을 적으며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내가 왜 짜증을 내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듯 싶다.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이 할 만 한 것이고,
무엇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헷갈려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이자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열심히 하면, 팀원이라고 생각하며 노력하면, 언젠가 팀에 합류 될 것이라고 믿었오며 일하던 때.
팀 리더의 발언을 들었다. 내가 주요 팀원에 속하지 않는다는 - !
그 말은 큰 상처가 되었고, 일본에 내 미래는 없으니, 일본을 떠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후에, 팀 리더는 정정하긴 했지만, 이미 그의 생각을 들어버렸으니..)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이제 떠날 준비를 하려고 하니까,
기기 팀이나 다른 팀원들에서는 내가 주요 팀원으로 대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것은  아쉬움인지 안도감인지, 정체불명의 기분이다.

나는 단칼에 말 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5년이라는 시간을 내가 여기서 보낸 것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내가 포기하고 여기서 일하는만큼, 나는 그에 대한 보상이 있을 꺼라고 믿었던 듯 싶다.
그래서 기꺼이 일했고, 새로운 것을 익혀나갔다. 그런데 그만한 보상이 없는 것 같다는 깨닳음은 사실 팀과 관련된 일들에 흥미를 급속도로 잃게 만들었다.

아니, 이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석사과정동안, 왕복 1시간 30분을 들여 '대기화학'수업을 들으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내가 풀고 싶어하는 문제 때문에 들었던 학점교류가 가능한 다른 대학의 수업이였다. 풀고 싶다는 의지 덕분에 그 수업에 흠취해서 당담교수님을 놀래킬 정도로 좋은 중간고사 성적을 받았었다. 그러나 중간고사 이후, 나는 연구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 대기화학은 나에게 필요없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관심은 급격히 사라져서, 나는 기말고사 공부는 커녕, 시험결과를 확인하러 가지도 않았었다 (? 기억도 안난다).

그 당시에는 '시간 아낀다'는 속시원함을 느꼈는데, 그 후, 나는... 아쉬움으로 그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충분히 잘 할 수 있었던 과목을,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흘려버렸던 것이었고, 마지막 마무리를 잘 못했다는 아쉬움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갖고 있는 것이다.

아하!
더이상 일본에서 일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마지막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면,
나는 분명히 남은 인생을 아쉬워 할 것이 분명하다.

나를 생각해보건데,
짜증나는 이유는 '필요가 없는데 일해야만 한다는 기분'때문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로인해 마무리를 잘못하면, 나는 평생 아쉬워할 기억을 하나 추가하는 셈이 될 것이다.

내가 기쁘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 역시 분명히 안다.
- 나를 팀원으로 생각하는 소수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고 싶다.
- 내가 하던 일을 잘 마치고 싶다.
- 여기서의 이들을 나중에 우연히 만나면, 부끄러움없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이순간 짜증에 꾸겨져 있을 시간이 없다.
진행해서,
마무리하고,
그리고 홀가분하게- 미련없이 떠나는 거다.

 2017년 목표가 새롭게 정정되는 순간이다.

2017/07/14

음악 영화에서 광기를 보다...! - The Whiplash (스포)

맙소사. 액션영화에서도 이렇게 강렬한 긴장감을 느끼긴 힘들 것 같다. 영화는 쉬지않고 주인공인 앤드류를 마구 후려치는 듯 싶다.

'대가大家'가 되기 위해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라고 쉬지 않고 대답을 재촉한다.

자기자신...?
연인...?
심지어는 가족까지...
하나씩 가지를 쳐내듯, 포기하며 앤드류는 자신이 열망하는 '대가'에 다가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음악가의 길이 정말 실제로 있을만한 일인지 아닌지는 음악 문외한인 나로서는 전혀 짐작가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처절하게 보여줄 뿐이다 - 기록에 남을만큼 비범한 재즈연주자가 되기를, 혹은 만들어내기를 꿈꾸는 앤드류와 플래쳐가 얼마나 가혹한지.
멋진 리듬이다! 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음향효과는 그 때문에 더욱 관객의 마음이 휘몰아치게 만든다. 저 리듬을 만들기 위해, 연주자는 저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치며 연습을 한 것임을 영상으로 보여주니 말이다.

처음 단순하게 보았을 때에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갈등은 크게 한 가지인 듯 보여졌었다.
19세, 희망에 가득차있던 어린 앤드류와 그의 음악선생인 플래쳐 사이의 갈등말이다. 플래쳐의 터무니없는 호통들이 전혀 현실감없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러나 영화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사실 영화 중심부에 놓여있는 갈등은 앤드류 본인의 내적인 갈등이란 점이다. 최고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었고, 완벽을 위해 자신을 던져버릴 수 있는 앤드류였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자신이 지양하는 바를 위해, 자신이 먼저 고백한 여인을 차버리고, 교통사고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대회장을 달려간다. 자신이 획득한 것이고, 자신이 노력한 것음을 보여내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가는 것이다! 그러나 플래쳐는 그것을 번번히 꺽어버린다. 마치, 그것이 다가 아니야! 이 멍청아!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광기"를 보여봐라!라고 하는 것 같다.

어쩌면 플래쳐는 마치 한 인물이 아니라, 앤드류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사회적인 장애물의 응축물 같기도 하다. 언제든, 네 대역은 존재한다는 듯, 바로 다른 드러머를 데려오고, 일부러 편하게 가족사를 물어보곤 그 약점을 두고두고 악담에 사용한다. 개인적인 이유는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다. 대회장의 활약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는 선생이 아니라, 바로 앤드류가 겪게 되는 '사회' 자체처럼 보여진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마지막 연주회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플래쳐, 그는 앤드류에게 일부러 다른 곡을 알려주곤, 앤드류가 처철하게 공연을 망치게 만드는 것이였다! 부드럽게 꼬득이던 얼굴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무대위에서 홀로 (빅밴드지만, 다른 연주자들이 앤드류를 공연중에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단 몇 분 만에 관객들 앞에서 무너지게 만든다. 앤드류의 멘탈도 인간인지라- 그는 무대를 떠나 아버지의 품에 안겨버리지만, 음악의 광기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곧바로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자신에게 그토록 악의적인 창피를 안겨준 플래쳐가 서있는 무대의 드럼에 돌아가 플래쳐의 사인없이 자신의 '엄청나게 좋은 연주'하나로 빅밴드 전체를 리드해버린다. "I'll kill you"라며 플래쳐를 도리어 내치는 앤드류. 드디어 영화는 자신의 광기를 발산해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는 앤드류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것이 플래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대답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는 플래쳐는, 다분히 앤드류에 대한 시험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 였던 것 같다. 여기서 네가 포기하면- 너는 쓰레기다. 나에게 네가 대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봐!라는 듯 하니까. 프래쳐가 마침내 앤드류의 연주에 대답하는 듯한 제스쳐와 표정을 보여주는 것은, 앤드류가 그가 생각한 연주자가 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듯 싶어진다. 플래쳐는 그가 "지도"할 연주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남을 연주를 할 수 있는 광기어린 연주자를 찾고 있었으니.....

과연 앤드류의 삶이 행복할까-에 대해서는 다분 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앤드류의 미래가 어떨지는 전혀 알 수 없으니까. 플래쳐의 인정은 곧 더 많은 시험을 의미할지도 모르고, 많은 대가들이 그렇듯, 그의 앨범은 남겠지만, 개인사는 불행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을 앤드류가 마다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앤드류의 아버지가 보여주던 표정도 의미심장하다. 감탄이 아니라-, 탄식을 하는 듯한 그 표정은 앤드류의 광기를 아버지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다다르고 말았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이 더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광기.
더불어서, 보여내고자 하는 열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가가 되기 위한 광기말이다.

2017/06/02

우선 순위

작가라면, 유명해지기 위해 글을 쓸 것이 아니라, 명작을 남기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은 사실 작가만을 위한 말이 아닌 듯 싶다.

연구자라면, 유명해지기 위해 논문을 쓸 것이 아니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논문을 써야 한다.

무엇이 "우선"인지 명확히 하는 거다.

2017/02/19

Countdown to zero, 2010 (핵무기 다큐멘터리 영화)

2010년 제작이니, 좀 오래된 다큐멘터리 영화인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핵무기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업데이트가 안되어서;;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영화였다.

핵무기를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무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테러단체들이 핵무기를 자체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어떻게 가능할지 각 재료들을 어떻게 살 수 있고, 운반할 수 있는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핵무기 충돌이 의도된 것보다도 얼마나 '실수'에 유약할 수 있는지를 수치와 실제 사건들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깜짝 놀란 것은 과거 미국에서 과학탐사목적으로 발사한 로켓에 대한 에피소드 였다. 러시아측에 목적을 전하였으나, 중간에 전달이 제대로 안되어 러시아측에서는 미국이 러시아를 향한 핵무기를 발사한 것으로 판단, 당시의 옐친 대통령에서 몇 분안에 대응 공격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었다는 사실이였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옐친은 대응공격판단을 유보했고, 덕분에 핵무기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모르던 사실이였다.

다큐멘터리로서 마지막에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사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핵무기 수=0로 만들자는 것
그리고 핵무기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방사능물질들을 국제연료은행에서 총괄하여 중간에 사라지는 것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자는 것이다.
가능할지는 몰라도, 시도가 필요함을 잘 설득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영화이나, 폭발장면들의 편집에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다.

2017/02/18

문득 드는, 나 자신을 위한 생각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내가 한 어제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느니.

지금 내가 하는 일, 내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모레 되고 싶은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2017/02/17

한 달 만에 또 방문. 마우나케아

지난 달의 방문 이후, 또 다른 관측시간을 얻었다.
이번에는 9일간의 연속관측인데, 사실 9일의 시간을 신청하면서도 정말 받을 줄은 몰랐었다.
함께 관측프로포절을 작성하던 경험있는 동료들이 9일같이 장기간을 쓰면 선택안될 확률이 높다며 만류를 했기에 결국 관측프로포절에는 최소 5일, 최적 9일로 정정해서 프로포절을 썼었던 것.

다행히 운이 좋았고, 관측시간을 얻었다.
그리고 4,100m의 고도를 매일 다니며, ... 마우나케아 정상의 날씨가 얼마나 다양한지 깨닳았다.
160 km/h 속도의 강풍에 대피를 하기도 하고
구름이 산정상에 운집하면서 100% 습도에 100 km/h의 강풍에 길이 얼을 것 같아 대피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계속 날씨가 나쁜 것은 아니였기에 3일간은 매우 관측에 좋은 날씨였고, 다른 3일은 구름이 끼었어도 관측은 가능한 날씨였다.
여러차례 매일 반복을 하다보니, 지상 관측에 대해 참 많이 배우게 된 두 달이 되었구나!

<산 정상의 관측소에서 산 중턱의 숙소로 가는 길>



<산 중턱의 숙소>



<강풍과 100%습도의 결과>



<강풍과 100%습도의 결과>



<강풍과 100%습도의 결과>



<산정상 부근의 연못.
망원경 조종엔지니어인 Greg과 이번 관측기간동안 친해져서, 같이 가봤다.>



<산정상에서 보이는 이웃 섬>



<마우나케아산의 그림자. 해질녁, 동쪽을 보면 볼 수 있다.
이를 알려준 Greg (망원경 조종엔지니어)에게 감사!>



<관측을 진행한 IRTF. 바로 옆의 산턱에서 바라본 모습>







<숙소에서. 저멀리 화산에서 뿜어지는 불빛이 밤하늘의 별과 어우려저서 멋졌다>

대전 생활 1년

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