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

오코노미야끼


어제 점심으로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집 앞 편의점에서 얼린 해산물을 사서 만들었던 오코노미야키.
혼자 먹었지만,
비주얼과 맛에 모두 반해서...
급하게 사진을 찍었었다.


한 나라의 독특한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그 나라, 혹은, 지역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서 독특한 맛과
그 나라 사람들이 왜 이런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을까를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음식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에
재미있는 음식일수록, 그와 연관된흥미로운 역사가 깃들어있기도 하다.

납작 둥글한 모양으로 '팬'을 이용해 요리한다는 기본은
우리나라의 전, 아메리카와 유럽의 팬케익, 프랑스의 크레페 등등 비슷한 여러가지들을 연상케 하는데,
묽은 반죽에 양배추를 얇게 채썰어서 섞은 것을 기본으로 두툼하게 부쳐내며, 소스가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생김새는 가장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두꺼운 피자가 연상되는 듯한 두툼납작한 모습을 띄고 있는 칸사이(오사카)오코노미야키와
여러 층의 양배추 기본 부침사이로 야키소바(볶음국수류), 해산물, 삼겹살 구이 등등을 넣어 쌓이올린 모습을 하고 있는 히로시마오코노미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히로시마와 오사카 두 지역이 모두 '우리가 원조'라고 기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카사에서는 오코노미야키를 밥반찬으로까지 해서 먹는 반면,
히로시마에서는 이를 웃음거리로 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까지 한다고 하니,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일본 전역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볼 수 있다만,
이 두 지역에서 만큼은, 혹은 이 두 지역 출신의 사람과 이야기 할 경우에는 '오코노미야키'라고 그냥 해야지, '히로시마(혹은 오사카)식 오코노미야키' 라고 지칭했다가는 험악한 꼴이 날 정도라고 하니, 매너로서 기억해둘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어디가 정말 원조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인데,
위키(영문)를 참조하자면, 첫 기록은 16세기즈음 등장하나, 재료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여러가지 변형을 겪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923년 간토대지진 후라고 한다.


자, 이제 내가 만든 오코노미야키로 돌아가보자.
오코노미야키라는 이름 자체가 좋아하는 구이이듯,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넣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일본이니 간편하지, 독일에서는 참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였다) 오코노미야키가 좋다. ㅎㅎ
 
내가 좋아하는 레시피는 한 일본인이 한국인유학생에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인데,
오코노미야키를 두툼하게 부치면서
옆에 계란 후라이를 구워 위에 오도록 부치는, 히로시마 식에 가까운 (허나, 매우 약식의 형태) 모습의 오코노미야키이다.





나에게는 오코노미야키 소스의 강한 향에,
마요네즈라... 칼로리의 적이자, 또다른 강한 향의 소스의 조합은 사실 좀 많이 부담스럽다.
오코노미야키 식당에서 먹으면서도
재료가 강한 소스향에 샤삭... 맛을 감추고 씹는맛만은 남겼던 것이였다.  (물론 비주얼은 무척 좋았다만 - 아래에 식당에서 먹었던 것 사진을 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마음대로 만들기에....
적당한 소스만 뿌린뒤, 위에 가쓰오부시를 듬뿍 울렸고,
반숙 계란을 좋아하니까, 계란도 반숙으로 익혀서 반을 잘랐을 때,
덜익은 노른자가 스윽- 소스처럼 베어나오도록 만들었다.
앗흐응~~
너무 맛있게 먹은 듯.


추신.-----------------------------------------------------------
아래는, 오코노미야키 전문점에서 사먹은 것인데,
맛이 기억 나질 않는다. -_-;; 소스가 참 강해서
소스맛이 거의 다 차지했었다는 기억밖에는, 어떤 오코노미야키였는지도 모르겠다;;
듣기로는 식당들마다 다르게 소스를 만든다고도 하던데, 어쩌면 맛집이 아니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 사람들과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 먹으면서도 소스를 왕창 뿌려먹던 것으로 보아서는 소스 맛으로 사람들도 먹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일본에서의 오코노미야키를 맛보고 싶어했던 것만큼은 소원성취했었던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2013/12/12

영국 집이 춥다는데- 영국인이 춥다는 일본집은?

인터넷을 하다보니,
영국집이 춥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가서 읽게 되었었다.

난방비 폭탄에 대처하는 영국인 겨울 홈웨어

http://v.daum.net/link/51666689


그런데 읽다보니....
그럼 도대체 일본은 뭔가- 싶어지는 거였다.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며 알게된 3명의 영국인이 모두 일본의 추운집(?)에 놀라워(??)했었기 때문이다. -3명 모두영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
-0-

그러고보니, 영국인들이 모두 '터무니없는 일본 난방시스템'만 언급하며,
집이 춥다-정도로만 이야기하지,
추워죽겠다까지는 아니였다.
나름 영국에서 단련되어있다보니, 일본의 추운 집은 그래도 살만했던걸까.

일본, 도쿄의 집들은
창문이 이중창이 아니라, 얇은 단일창에
따로 난방시스템없고,
목재건물의 경우에는 벽도 얇아서 단열은 커녕 단음도 안되어 길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들릴 정도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밖의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것이
작년 겨울 2-3번 정도 밖에 없을 정도로 온화한 날씨란 것이겠지.
그런데도
집안에서 입김이 보이고,
이불 아래 바닥닿는 곳이 방바닥과 나의 온도차에 물이 응결해서 축축하게 젖어버리고,
난로를 켜지 않으면 손이 시려서 타자치는 감각을 잃던 것은 무엇인지.

뭐... 올해 두 번째인 이 겨울은 그래도 나름 방열작업도 했고,
작년의 경험덕분에 놀라지는 않게 된다.
그러려니하며, 등유난로를 트는 거지.

2013/12/08

도쿄의 헌책방 거리 (칸다 진보쵸)


도쿄 내에 헌 책 서점들로 즐비한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블로그와 기삿글을 통해 알게 되었었다.



(길 건넛편으로... 주욱 이어지는 가게들이 헌책방들이다
-한 블럭 넘어서 저너머까지도 헌책방 간판들로 가득했다-
직사광선이 상점내에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게들은 모두 북향에 위치한다고 인터넷상에서 주워들었다.)


지금껏, ... 한국에서도 헌 책 방 찾아가보긴 했었다만-
그리고 다른 나라의 몇 헌 책방을 가보기도 했다만-
헌책방 "거리"를 본 적은 없어서
관련 글들을 찾아보며 점점 더 흥미로움을 느꼈었다.

칸다 진보쵸라고 불리는 지역인데,
근처에 대학이 3곳이나 있다보니 자연스레 중고서적 거래가 활기를 띄게 된 곳이라고 한다.
수 년 전만해도 더 큰 규모였다고?
헌데, 현재의 거리도 내가 보기에 이미 무척 큰 터였다.
또한,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또다른 이유라면,
대학가의 중고서점가라면, 영어책을 찾기도 쉽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추측이였다.
그리고 역시나!~

초반에 들려본 서점들 3곳 모두 영문 중고책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뭐가 뭔지는 둘러봐야 알 수 있지만,
원래 서점에 뭔가 목적을 갖고 가기 보단-
윈도우 쇼핑하듯
두리번 거리는 내 스타일에
이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조건이다.




헌책방들은 우리나라의 헌책방이나, 다른 여타 나라의 헌책방들처럼
'저렴이'들은 서점 앞/밖까지도 주욱 쌓여있다.
100엔부터 300-500엔 정도면 왠만한 작은 사이즈의 소설류를 사 볼 수 있다.

책들의 상태는 매우 좋은 수준.
다만, 내 일본어는 이 책들을 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제목도 못 알아듣는데 뭐. -_-;


이곳의 헌책방들은 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어서,
듣기로는 만화책들을 대량 보유하기도 하고,
잡지류,
그리고 내가 들린 곳들은 예술서적,
전공서적들을 모아 놓은 곳들도 있었다.

특히나, 예술분야 서적이 있었던 한 상점에서는
나는 유럽의 도서관 박물관에 온 기분은 한 켠에서 느껴봤다.

 

 이렇게...
현대 책들에서 볼 수 없는 스타일의 양장책들이 가득한 책장에서는..



1800년대에 출판된 책도 봤다!
헌책으로 싼 책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앤티크한 책수집가를 위한 곳도 있는 것이였다.
(내가 한 번 집어본 책은 11만엔 이였으니.. 
내 DSLR카메라 보다도 귀하신 몸이셨다 -0-. 
책장 넘기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다시 살포시 책장에 돌려넣었었다.)

 


서점마다 그 수집품 성격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전시를 해놓았고,
잘 찾는다면 괜찮은 영문서적을 찾는 것도 가능해보이는 지역이였다.

덕분에 이 사진의 서점과 전공서적을 파는 서점(사진없음)에서 한 참 머물렀었다.
내가 이번에 구매한 아이템은 전공서적을 파는 곳에서 획득한 것인데,
와웅....
이럴수가!
나는 이걸 보고 대번에 반해버렸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제작한 이집트 건축물 스케치 원본을 재발행한 (미국에서 1987)책이 있는게 아닌가!


이 책의 스케치들이 내가 갖고 있는(한국에 있는) 이집트 관련 다른 책자들에서 종종
인용되던 터라...
나에게 이 책의 그림들은 익숙한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항상 궁금해하던 책을 이렇게 도쿄의 헌책방에서 만날 줄이야.
나는 아주 무거운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바로 책을 사왔다.
가끔... 책을 펴보면서 내 이집트 여행지들을 되새겨보는 재미를 즐겨보기 위해서랄까.




저렇게 거대한 그림을 보고 있자니....
아아 ... 이집트 여행가서 저것들을 직접 보던 그 순간이
무척 멋진 일이였음을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칸다 진보쵸 중고서점 거리..
도쿄에서 내가 혼자 즐기러 갈 수 있는, 좋아하는 곳이 드이어 생겼다.


==============
방문 팁.
------------------------
진보쵸 역, 혹은 오차노미즈, 신오차노미즈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있다.
주변으로 카페도 많아서 책을 사서 카페에 앉아 읽고 있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책 안에 혹은 책이 꽂혀있는 책장에 책 가격이 표시되어있다.
==============

2013/12/01

카카오스토리를 관두다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던가?

일본에서의 녹록치 않은 생활에 외로움이 사무쳐 시작했었던 카카오 스토리였었다.
그런데, 내가 심사가 정말 단단히 꼬였는지,
카카오스토리를 하면 할 수 록,
외로움은 더욱 심해져가는 거였다.

결국 나는 부러움에 서글퍼하느니, 외로움을 이길 방법으로 카카오스토리를 접기로 마음먹었다.
차라리 이런저런 연락이 안되는 편이
외로운 해외생활을 이겨내기에는 훨씬 나을것 같다.
죽은듯이 사는 것이 해외생활 아니던가.

2013/11/28

가을 산행

가을 단풍구경한다고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에 다녀왔었었다.

그동안, 도쿄 근거리 산들을 이곳저곳 다니다보니,
산입구의 기차/전철역에서는 항시 편의점이나 기타 식당들을 찾기쉬웠고,
산행 도중에도 식당들을 2곳 이상은 꼭 본 터였다.

이번에는 집에서 좀 거리가 되고,
낮도 짧다보니,
집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했다.
도시락을 사갈 시간이 없어서
점심은 산행길의 식당 혹은 기차역 앞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살 생각으로
우선 산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고봤었다.

그런데,
이번 산은 인기가 없는 산이였나보다.
(일본의 산행안내 책자에 나와서 유명한줄 알았는데!?)
기차역에서부터.....
너무 작은 역사 근처로는 어떻게 편의점하나 없는 거였다?!
이런 곳은 도교 근처 산행 역사상(그래봤자 1년이다만) 처음이야! -_-;;;;;

나는..
이미 한시간 반을 기차를 타고 온터라,
산 위에 뭔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나마 1리터의 물은 가지고 왔고,
바로 앞의 작은 선술집(?)에서 술안주로 팔던(?) 과자 두 봉지는 살 수 있었던 것을 들고 산행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 과자 두 봉지와 물 1리터가 내 아침식사와 점심식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6시간 산행을 했다.
-_-;;;;;

인기없는 산(?)이라서 사람 없이 한적한 것은 무척 좋았다만,
컵라면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산행이 되었을지...
참 안타까운 산행이였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사진을 보니, 좋아보이긴 한다.









정상 즈음 도착했더니,
1,364m란 낮은 고도 임에도 겨울 풍경이였다.

다들 정상에 자리잡고 앉아 휴대용 버너에 라면을 끓여먹거나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먹고 있어서 나는 참 부럽게 바라봤다.

나는...
그래도 산행 중 과자 다 안먹고
하나 끝에 남긴 것을..
정상까지 왔으니, '상이다-'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먹었었다.
(흐음. 나 이제 그 과자 더이상 안먹어도 될 것 같아. 이 날, 충분히 즐긴듯.)






마지막에 폭포를 보는 코스를 갈까말까 정상에서 많이 망설였는데,
이 코스가 단풍과 낙엽을 보기에 참 좋은 풍경을 품고있었다!
역시, 산행은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다르면 더 재미있는 듯 싶다.

다음 산행때에는 꼭 휴대용 버너와 물통/물, 그리고 컵라면을 꼬옥 챙기리라!!!
(산불위험 때문에 숲에서 불 못쓰는 줄 알았었다.;;
상관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구나.)

우라질 하루.

마음이 불편하니까,
밝게 이해하지를 못하는 거겠지.

마음이 괴로우니까,
삣뚤게 보는 거겠지.

마음이 외로우니까,
다 서글퍼지는 거겠지.

아무래도 그런거겠지.

....
내 마음에 안드는 상황이
나를 매일매일 슬프게 만들어도,
그렇다고 일들을 모두 뾰족하게 받아들이다간
아무런 연고도 없는 - 이 삭막한 곳에서
그저 나가떨어지는 것밖에는 없잖아.

내 욕심이 불행의 원천이고,
내 마음이 사실 행복의 근원이라며.

여기에서 할 수 있는한도 내에서,
만족하는 방법을 찾고,
일하는 환경의 부족한 것 투성이에
성과는 저만치 뒷걸음질만 하는 것 같더라도,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이끌어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방법밖에 없잖아.

이번 한 달,
내 마음을 힘들게하는 내 욕심을 한 번 버려보자.
담담하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해보면
어떻게 될 지 보자.

2013/11/23

영화 - 고지전, 이렇게 잘 만든 영화가 왜 흥행대작이 되지 않은거지??



전쟁영화를 여럿 본 듯 싶으나, 이 영화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는 못 본 것 같다.
'전쟁의 이유가 무엇인가,
왜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싸우고 죽이며,
이토록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가.'
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
또 전쟁터에 발을 디딛는 군인들의 모습을 절절하게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쟁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을 배우면서,
나는 사실 적군과의 대전에서 가장 '앞 줄'에서 '죽으려고 뛰어드는 군인'은 어떠한 심정으로 저기에 뛰어드는 것일까- 많이 의아해하곤 했다.
 분명 살아오지 못 할 것임을 아는데-
어떻게 '와아~!!!'하는 함성만으로 빗발치는 총알과 포탄으로 뛰어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가장 최전방,
에록 고지라는 곳에서의 어제, 오늘, 그리고 그동안 수십번, 수백번은 남과 북으로 주인이 번갈아바뀌던 치열한 한 지점을 지키는 부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가장 치열한 앞 줄에 선 사람들의 생존사 혹은 사망사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누구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였다.
더이상 북이든 남이든,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았고,
동료가 있을 뿐이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을 뿐이였다.
그러함에도 그들이 그곳에서 죽어나간 이유는 다만 한가지.
되도먹지 않은 연합군과 남북 지도자들의 땅따먹기 놀음에 싸울 뿐이였다.
그저 명령에 따라야 했던, 그들의 슬픈 하루는 '휴전'이 언제 될까라는 소망 하나로 이어져 나갈 뿐이였다.
이제 이기는 것은 더이상, 이들의 목적이 아니였던 것이다.

-------------------------------------------------------------------------------

(스포일러 있음)


다음(Daum) 영화 정보에서 발췌한 이미지


남북의 애절한 인간사를 그리는 영화는 그동안 여럿 있었던 듯 싶다.JSA와 웰컴투동막골, 그리고 태극기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고지전, 이 영화는 인간사는 인간사이되,
좀 더 전쟁의 아이러니에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왜 전쟁을 하는가? 라는 질문은 사실 영화 초반부터, 그리고 끝까지 이어지는데,
헛, 참......

모두들...
왜 전쟁을 하는지는 모른다.
전쟁이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하질 못한댄다.
그 누구도 더이상 전쟁을 이어가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저 내 전우를 이 전쟁에서 더이상 잃고 싶지 않을 뿐이고,
수많은 전우를 잃으며, 그리고 사실은 죽이기도 하며,
이어나간 내 생명이 여기서 꺼지게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였다.

그간의 장기전으로, 적군까지도 사실 모두 안면이 생겨버렸었다.전쟁속에 그들은 모두 서로 아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살기위해 죽여야 하는 입장이다.
서로 아는 그들이 서로를 죽이면서 일렁이는 감정의 흐름이
화면 곳곳에서 넘쳐난다.

왜 전쟁을 하는가!
그것은 사실 이 소모전에서 더이상 의미있는 질문이 아니였다.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전쟁터의 소모품이였다.

"도대체 언제 휴전이 되는 거냐고!!!"라고 울부짓으며 수 년 동안 계속 기다린다.
우리는 죽은건가, 살아있는 건가?
스스로 헷갈려할 지경에 이르럿기에
휴전은 단 하나의 희망일 뿐이였다.
헌데, 전쟁의 아이러니는 그들의 희망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영화 후반에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나간다.
영화 후반에 들어 말만 하던 휴전협정이 드디어 타결된 것이였다.
"휴전이다...!! 휴전이 되었어! 집에 가는 거다."
라며, 남과 북 군인들은 서로 한 계곡에서 만나서도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
사실, 그들 서로 죽인 동료들이 많으나 서로 전쟁에 진저리를 치는 이들이였기에 휴전이 더 큰 의미였던 셈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쟁은 마지막까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전쟁을 왜 하는가!!
...
나는 그들 모두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다만,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했을 뿐이겠지.
최종 작전회의에서 그들은 더이상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는데,
휴전협정이 맺어져서 발효가 시작되기까지의 12시간 동안
저 언덕, 저 고지를 탈환해서 국토를 조금이라도 더 넓혀야 한다는 상관의 말은...
마지막 남은 너희 목숨을 내놓고 전쟁을 마무리 짓겠다는 윗사람들의 명령과도 같은 것이였으니까.

전쟁의 이유.
그것은  땅따먹기에 혈안이 된 연합국과 공산국 지도자들을 위한 것일 뿐이였다.

최전방의 이 군인들을 끝까지 소모품으로서 '끝날때까지' 써먹어야 할 존재였다.
그들에게 의미를 잃어버린 한국전쟁의 소모전은
단 하나 소망이였던 휴전이 되었음에도-
소망은 곧, '살았다'가 아니라, '죽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되어버린 아이러니였던 셈이다.
살아남고자 전쟁했던 이들은 이제 휴전 발효 마지막 전쟁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러 뛰어든다.
전쟁영화가 그러하듯- 영화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전쟁 속의 사람들의 모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태극기와 웰컴투 동막골),
한국전쟁에 대한 냉정한 비판적 해석을 만들어냈다.

세부적인 감정 처리, 각 인물들의 적절한 배치나 연기력, 인물들의 참혹한 생존사,
거기에 가장 중요했던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선까지 더불어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매우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가 아닐까 싶다.
DVD로 소지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2013/11/15

주말 아침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우울하게 지내다간
있는것 마져도 잃는거다
현재를 바꿀수 있는것은 단 한가지마음가짐으로만
가능한데.
다른 것 다 필요없다ㅡ다만 낙천적인 마음.
그 것 하나가 현재를 긍정하고 
거기서 벗어나게 하는 윈동력이되는 거다.

근데. 머리로는 아는데 우울해지는 마음을다스리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아직도나는 갈기리 멀다

2013/11/04

토우노다케 (塔の岳)-1491m


올 해는 산을 유난히 자주 가게 된 것 같다.작년까지만 해도, 보통 일 년에 두 세 번 갔던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3월부터 거의 매 달 갔구나 -_-;

젊은 지형의 산들이 산세가 험한 대신에 볼거리를 많이 제공해준다는 것은
일본에서도 마찮가지라서 꽤 좋은 경치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이 아직 그렇게 많이 땡기지 않다보니,
산으로 산으로- 나는 산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큰 잡념없이 그저 걷다보면,
따악- 등장하는 스펙타클이 무척 설레이는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나는 어제도 산을 다녀왔다.
사실은 가을의 단풍을 보려고 갔으나,
이미 단풍은 낙엽이 되어버려 있었다 -_-;
너무 늦게 갔네 - 뒤늦은 깨닳음의 이번 산행.
그래도... 흐리던 와중에
내가 때마침 정상에 도착했을 때,
잠깐 나와준 해가 후지산이 바라보이는 전경을 만들어내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거기에 계속 이어지던 계단 산행길 덕분에 무릎이 무척 피곤해졌고,
하루 지난 오늘은 다리에 근육통이 찌리찌리 하다.
사실, 무척 고민을 했던 것은 카메라를 가져갈까, 말까였다.
단풍을 기대했으나, 날씨가 흐렸기 때문인데-
결국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나는 그 선택에 무척 감사했었고, 무척 서글펐었다.
첫째는 매우 가볍게 짐을 챙겼음에도 힘에 부친 산행길 때문에- 카메라를 갖고 이 길을 다녀왔다면 극기훈력 또 뺨쳤을 테고,
둘째는 정상에서 보디언 후지산을 비롯한 주변 산세의 풍경이 너무 멋졌던 것이다!!!!

아흣....ㅠ.ㅠ
모바일 카메라로 대신이나마..



2013/11/02

이제 평가는 내가 하는 거다.


조금씩 나를 파악해 가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연연해 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조금만 더 냉정히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내는 것을 즐기면서,
'아하!'하는 기분에 연구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잘했어!'라고 칭송이라도 듣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였을텐데...?
이것은 한 참 잘못된 자세가 아니던가.

나 스스로 좀 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는데.
그럼 .... 피곤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열정적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이제 시작해볼까.
그저 열심히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으로.
내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기쁨을 제대로 누려봐야지.

2013/10/27

우울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

우울한 날에는 따뜻한 먹거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거다.


잘 차릴 필요는 없다만,
건강한 것으로 특별식을 만들어보는 거라고나 할까?
힘든 나를 위해, 좋은 것을 챙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혼자 오래 살다보니,
내가 나를 잘 다독이는 법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만든 야채 오븐 구이 오믈렛.
양파 듬뿍, 신선한 토마토에, 좋아라 하는 체다 치즈도 넣었다.
브런치로 먹었더니, 잇힝~보기에 좋고, 맛도 있고.

우울하다고 밥도 안먹고 있는 것 보다는,
한시 빨리 기운내서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것이 나으니까.



얼마전, 동네의 벼룩시장에서 득템한 일본제(중국제가 아님) 그리고 영국 스타일의 커피잔 세트.(흠. 영국 스타일이면 홍차잔 세트라 해야하나...)
내가 보기엔 참 예쁜데, 이렇게 새 거나 마찮가지인 이 아이가 세트로 단 100엔 밖에 안한거다.
바로 샀지.
이렇게 카푸치노 만들어 담아 아침마다 홀짝 거리며 마시니까, 투박한 머그컵과 다른 맛이 나는 것 같다.










2013/10/20

집근처의 아이스링크


근처에 있는 실내 아이스 스케이트 장은 겨울이면 문을 연다. (여름철에는 실내 수영장)
기대하던 개장날인 오늘!


개장날은 무료개방이라는 말에 (신발대여비는 내야함)
나는 개장시간에 부랴부랴 찾아갔다.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

여기 꽤 마음에 든다.
종종 찾아와야지.
거기에 더불어, 일요일 새벽 6시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피규어 스케이팅 강습도 있다.
- 이거 하려고 지금 벼르고 있는 중 (가장 저렴한 녀석으로 스케이트도 이미 질렀다).
피규어 스케이트 사랑이 일본에서 유난하다고 하더니,
어린 아이들부터 (뭐, 이 나이대는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도 많이 봤다)...
60-70대는 족히 되어보이시는 할아버지들도 멋지게 터닝(!)을 연습하고 계시는 거였다.
어이쿠. 우리나라 같으면 골절상 입는다고 아이스 스케이팅은 안하실만한 나이이인데...!
많이 신선했다.

이번 겨울의 새로운 취미생활로 아이스 스케이팅을 시작해보는 거다.

2013/09/11

일본에서 분실물 찾기

저번주 금요일이였다.
모처럼 은행의 ATM기에서 돈을 찾은 뒤,
쇼핑을 하다보니, 이것저것 많이도 사버렸었다.
그래도 저녁거리를 만들어먹을 생각에 부랴부랴 집에 돌아왔는데...

아니....!
열쇠지갑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어이쿠야.
열쇠 없이 집에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고,
연구실은 어떻게 들어간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ATM기 앞에서 열쇠지갑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주워들고 ATM기를 사용했었던것이 열쇠지갑이 기억나는 마지막이였고,
분명 ATM기 옆에 두었을 터였다.
이미 1시간도 전의 일이라, 과연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다만,
방도가 없기에 나는 힘껏 자전거 패달을 밟아 은행 ATM기에 되돌아 갔다.

앞서 사용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부스에 들어가보니,
아무리 봐도 휑한 ATM기 주변이였다.
아아아아...
어쩐다냐.....
그래도 혹시 싶은 마음에 은행 창구와 연결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일본어가 안통해도, 혹시라도 어떻게든 의사전달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어처구니 없는 처사였지.
그런데, 정말 운 좋게도,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하자, 영어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으로 교환해주는게 아닌가!!
그 사람을 통해, 은행 쪽으로는 통보된 분실열쇠가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혹시 가장 가까운 파출소에 문위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을 해주는거였다.

아, 은행의 ATM기는 사실 전철 역사에 있는 거였는데,
역 광장에 작은 파출소가 있는 것을 오며가며 눈여겨봤던 것이 기억났다.
사실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만,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파출소로 향했다.
역시나 말이 안통했지만...
어설픈 일본어를 최대한 동원해서, 쉬운 영어단어와 섞어서 말하다본니....

우와와아아아아!!!
파출소의 경찰관은 '아....'하면서 들어가서 뒤적뒤적 하더니,
내 열쇠지갑을 들어보이며, '이거?'라는 게 아닌가!

우와와아아아아아~!!!!
파출소에서 정말 무엇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일본의 사회가 새삼 감탄스럽게 느껴졌다.
(다음날, 일본인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운이 매우매우 좋은 것일 뿐, 사실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단다. 그러니, 혹시라도 분실물을 못찾는다해도- 특히, 지갑없이 열쇠만 잃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포기해야 할지도...)

그러나 한 고비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파출소에서 분명, 나의 신분 확인을 해야, 분실물을 넘겨줄 것이 분명했으니까.
짐작하던대로, 약 30분 동안.... 지루한 서류작성이 이어졌고,
다음날 새벽 7시(!!!)에는 확인 전화까지 오더니- 사실 방문 가능하냐는 문의전화였다 -
결찰관이 방문해서 전 날 작성한 서류에 최종 확인을받고 돌아가는 거였다.

아..
이렇게 분실물 처리가 이어지는 구나.
전 날 새벽 2시에 잠들어서 새벽 7시 방문이 너무 과하게 느껴지기는 했어도-
분실물을 찾았다는 점, 그리고 분실물을 아무에게나 주지않고, 준다고 하더라도 다음날 방문확인을 한다는 점은 철저한 보안에 안심하게 해준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미스러운 상황을 최대한 없애기 위한 것일테니까.

여기 치안 꽤 괜찮은 것 같다.

2013/09/07

마음대로 베이킹


-연주 베이커리-
일주일에 한 두 번 비정기적 오픈.
제빵사의 능력과 작은 오븐, 그리고 단 한 명의 고객으로 인해,
한 종류 빵만 S-M 사이즈로 제공.








발표빵 입문- 1년이 넘어가는 듯.
그 기념.
그리고 저번에 실패한 베이글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 기뻐서~!
크흣~


대전 생활 1년

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