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예정된 일정보다 3시간 이른 새벽 5시즈음 연구소에 도착해서
일본 금성탐사선(Akatsuki)의 궤도 진입과정을 사람들과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
약 20분간의 엔진작동의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고,
그리고 그 뒤의 환호를 사람들과 함께 하던 기분이란 -!
지금껏 상상하던 것 이상이였다..
성공할거라고 믿으며 가져온 샴페인을 연구실 동료들과 나누고,
이제 차례차례 나올 이미지들에 대한 기대감을 달래며,
그 날 저녁에는 탐사선에서 볼 금성이 어떤 모습일지 계산하다보니,
밤 12시가 곧 되어버렸다.
앞으로 2년간의 관측활동은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2015/12/17
2015/12/04
금성까지 D-2. 금성탐사선
(금성 탐사선 상상도. Image: JAXA)
이틀 뒤,
월요일 아침이면
내가 일하고 있는- 그리고 일하게 될,
일본의 금성탐사선 성공여부를 알게 된다.
5년 전의 실패 때문에 여기 사람들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2010년, 첫 행성탐사선은 모든 상태가 정상이였기에- 성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축배를 들 준비를 하던 일본 연구원들은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받게 되었다.
금성탐사선 궤도진입 실패!
주 엔진이 고장나고 말았던 것이다.
근 5년동안 금성이 아닌 태양 궤도를 돌게 되었던 비운의 금성탐사선인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금성탐사선은 버려지지 않았다.
5년간 연구원들은 탐사선의 상태와 궤도 수정을 거듭해서
7월에 궤도를 수정했고,
그리고 이틀 뒤에는 다시 한 번 금성 궤도 진입을 시도 한다.
주 엔진이 고장났으므로 보조엔진을 총동원한다.
짧은 시간 사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보조엔진을 장시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염려는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7월의 궤도 수정 성공은 월요일, 성공의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걱정만해서 무엇하랴-
실패를 걱정하기보다는
성공의 기대감으로 주말과 월요일을 기다려 보려고 한다.
낮 술을 위해 샴페인을 가져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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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2015/11/08
오랜만에 빵을 구웠다.
요 몇 달, 바쁘게 지내다보니, 블로그 업데이트도 안되고, 빵도 못구워먹었다...ㅠ.ㅠ
오랜만에 구운 빵 기념샷.
보기엔 괜찮아보이긴 하는데-.....
일본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넣어서 만들었더니, 어떤 맛일지 전혀 모르겠다.
내일 아침이면 알 수 있겠지.
One day in Kyoto 2015. 교토에서의 하루
토요일-주말이지만, 학술미팅이 교토에서 있었다.
생각치않게 결정된 교토 주말 방문은 이 미팅 때문이였다고 할 수 있네.
처음 가보는 교토이기에 일요일에는 도시를 한 번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단풍이 들때라서 관광객으로 붐빌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었지만...
정말 이렇게 많은 일본인과 아시아, 그리고 약간의 서양관광객들을 한 중형 도시에서 보기는 일본생활 처음인 듯 싶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가득한 도시 - 그것이 아무래도 나의 쿄토에 대한 첫 인상이 되어버린 듯 싶다.
Tenryuji(天龍寺, 텐류지)근처에 대나무 숲이 있다고 적혀있기에 찾아갔다.
단풍이 들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담기는 오랜만이라 반갑다.
텐류지 입구 바로 앞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좀 비싼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걸으면 되는 거리에 한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매우 작은 오코노미전문점이 있어서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다. 좀 많이 기다리긴해도, 지금껏 일본에서 먹어본 오코노미야끼 중 가장 괜찮은 맛이였다.
교토 시내에 위치한 Nijijo (二条城 니조조 혹은 니조성)로 발길을 돌렸다. 연구실 동료가 가까우면서 가 볼 만하다고 추천해줘서 가봤는데, 접근성과 볼거리가 마음에 들었던 곳이였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성을 건립한 후,
1626년 완성되어 당시의 건축과 미술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성이라서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하면 역사시간에 봤던 초상화가 생각날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뚜렷한 기억이 없어서, 한 번 찾아봐야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동시대 인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16. 그는 도요토미의 부하로서 조선 출병을 준비하였으나, 막상 임진왜란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다만, 도요토미의 사후, 도요토미 집안의 보좌를 맏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권력이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자신의 집안에 위협이 되던 도요토미 집안을 멸망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73세로서 사망하기까지, 에도막부의 초대 쇼군으로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무역을 시작하며 일본 근대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 편으로는 조선통신사를 받으며 조선과의 무역정상화를 이루었지만, 류큐왕국(오키나와)를 침략해서 막부의 속국으로 만들었으니, 일본 내의 정치뿐 아니라, 외교도 주름잡던 사람인 셈이다.
말이 길어졌으나,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내가 방문한 니조성에 거주하지 않고 '슨푸성'이란 다른 성에 거주했던 모양이다. 1603년 만들어진 니조성은 1639년까지 쓰이곤, 200년이 넘는 기간 일본역사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했다. 그러다가 230년간의 통치기간동안 도쿠가와 막부는 힘이 약해져서 천황에게 통치권을 넘기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을 1867년 니조성에서 하게 된다. 초대 쇼군이 니조성을 만들고, 마지막 쇼군이 니조성에서 끝을 맺으니, 시작과 끝이 이곳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곳이다.
생각치않게 결정된 교토 주말 방문은 이 미팅 때문이였다고 할 수 있네.
처음 가보는 교토이기에 일요일에는 도시를 한 번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단풍이 들때라서 관광객으로 붐빌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었지만...
정말 이렇게 많은 일본인과 아시아, 그리고 약간의 서양관광객들을 한 중형 도시에서 보기는 일본생활 처음인 듯 싶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가득한 도시 - 그것이 아무래도 나의 쿄토에 대한 첫 인상이 되어버린 듯 싶다.
Tenryuji(天龍寺, 텐류지)근처에 대나무 숲이 있다고 적혀있기에 찾아갔다.
오오! 그런데... 걷다보니, 금방 .. 끝나버린다!!
큰 규모의 숲이 아니다. 거기에 사람은 또 너무 많다.
인터넷 사진처럼 한적한 곳이 아니다보니, 결국.. 사진찍기가 쉽지 않다.
다만, 틈을 노리다보면... , 사진을 찍어볼 재미가 쏠쏠해지는 곳이다
다만, 틈을 노리다보면... , 사진을 찍어볼 재미가 쏠쏠해지는 곳이다
Tenryuji는 일본식 정원으로도 유명한 모양이다. 뭔가 규칙을 갖고 만들었다는 것을 비전문가가 첫 눈에 보기에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건가? 텐류지는 위의 사진처럼 건물 내에 들어가는 것과 정원을 따로따로 입장료를 받아 관람할 수 있다. )
가을이라고 단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꽃들과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는 정원이였다.
단풍이 들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담기는 오랜만이라 반갑다.
텐류지 입구 바로 앞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좀 비싼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걸으면 되는 거리에 한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매우 작은 오코노미전문점이 있어서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다. 좀 많이 기다리긴해도, 지금껏 일본에서 먹어본 오코노미야끼 중 가장 괜찮은 맛이였다.
(작은 내천 위로 난 다리가 집의 입구이자, 주차장도 되는 모양이다.)
교토 시내에 위치한 Nijijo (二条城 니조조 혹은 니조성)로 발길을 돌렸다. 연구실 동료가 가까우면서 가 볼 만하다고 추천해줘서 가봤는데, 접근성과 볼거리가 마음에 들었던 곳이였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성을 건립한 후,
1626년 완성되어 당시의 건축과 미술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성이라서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하면 역사시간에 봤던 초상화가 생각날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뚜렷한 기억이 없어서, 한 번 찾아봐야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동시대 인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16. 그는 도요토미의 부하로서 조선 출병을 준비하였으나, 막상 임진왜란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다만, 도요토미의 사후, 도요토미 집안의 보좌를 맏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권력이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자신의 집안에 위협이 되던 도요토미 집안을 멸망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73세로서 사망하기까지, 에도막부의 초대 쇼군으로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무역을 시작하며 일본 근대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 편으로는 조선통신사를 받으며 조선과의 무역정상화를 이루었지만, 류큐왕국(오키나와)를 침략해서 막부의 속국으로 만들었으니, 일본 내의 정치뿐 아니라, 외교도 주름잡던 사람인 셈이다.
말이 길어졌으나,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내가 방문한 니조성에 거주하지 않고 '슨푸성'이란 다른 성에 거주했던 모양이다. 1603년 만들어진 니조성은 1639년까지 쓰이곤, 200년이 넘는 기간 일본역사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했다. 그러다가 230년간의 통치기간동안 도쿠가와 막부는 힘이 약해져서 천황에게 통치권을 넘기는 '대정봉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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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생활 1년
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