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키소 계곡의 행로..
이 날은 추마고(tsumago)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나기소(Nagiso)에 걸어가서,
그곳에서 약 1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는 키소후쿠시마(kisofukushima - 익히 알고 있는 후쿠시마와 똑같은 발음이라 흠짓 했었다)에 가서 하루 묵는 일정이였다.
우선, 여관에서의 아침식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식사는 저녁때보다 간소하다. 어차피 밥을 많이 먹지 않다보니, 상관없었다만..)
그리고 체크아웃을 한 뒤, 추마고 마을 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커피가 그리워진 나는 전 날 봤었던 마을의 카페에 들어가봤다.)
(운치 있는 거리의 소담한 카페에서,
작고 특이한 디자인의 일본 커피 잔에
나는 드립 커피 한 잔의 작은 사치를 누렸다.)
(나무가 결국 지붕을 밀어내진 못한 듯.)
(뙤약볕에 쌀을 말리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농촌 풍경을 기억나게 했다.)
(지나던 길에 본, 상냥한 고양이.
그러나 털이 심각하게 많이 날려서, 날 많이 심란하게 만들었구나.)
(뭔가를 비교하던 두 꼬마)
나는 추마고 마을 내에 있는 두 채의 문화재 보호 건물 (고위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숙소들이였다)과 마을 박물관을 둘러봤다.
한 안내원이 유창한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자세히 해주셔서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었네~ ㅎㅎㅎ
우선, 첫번째 보호건물은 다이묘라고 불리는 일본의 영주들이 지나는 길에 머물던 숙소로 쓰이던 건물이였다.
역시, 권력!
이 건물의 규모나 시설은 지금껏 마을 내의 다른 작은 건물들의 3-4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다른 마을 내의 건물들이 워낙 소박하다보니,
덕분에 이 건물의 마당, 정원, 연못, 복도, 거기에 화장실까지..'부유한' 건물로서 더욱 돋보이게 되었던 것도 있는 듯 싶어지기도 했다.
(이걸 보니, 최근들어 문인화에 심취하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엄마가 그려준 문인화를 저렇게 만들어서 나도 걸어놔야지.)
건물 내에는 이렇게 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두 개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 여름에도 불을 피운다고 했다.
사실, 처음 건물에 들어서면서 자욱한 연기에 좀 놀랐었고, 왜 이렇게 연기가 가득하도록 놔둔 것인지 의아했는데,
이후, 들은 바에 따르면, 이렇게 연기를 피움으로서 목조건물에 생기는 벌레들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였다. 오호라. 목조건물과 과도할 정도로 높은 습도의 기후라는 최악의 조합을 해결하기위한 방법이였다. 문제라면 이 연기가 벌레를 예방하기는 해도, 온 집안에 그을음을 남긴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주부는 집안을 매일 벽까지도 걸레질을 해야했다고 한다(!). 오늘날 박물관으로 보존되면서도 이 일을 매일 계속 된다고 한다.
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키 작은 사람의 손이 닿는 높이까지 벽이 반들반들 윤이 나고, 그 위의 높이로는 그을린 자욱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 주부(이제는 관리인)의 키+팔길이라 할 수 있구나~
그리고 나는 다음의 보존 건물을 찾아갔다.
이 건물 역시 다이묘를 위한 숙소였으나, 제 2 숙소 정도로서, 앞서 방문한 건물이 상위 다이묘에게 이미 쓰이고 있으면, 같은 날 추마고에 머물게 된 하위 다이묘는, 조금 작은 규모의 제2숙소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나 두 다이묘의 일정이 겹칠일이 거의 없다보니, 이 작은 다이묘를 위한 숙소는 거의 쓰이지 않았고, 지원조차도 마땅히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집의 주인은 이 집에서 양조를 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하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양조를 통해 부를 축적해서,
집안의 목조부분을 가장 비싼 나무자재로 바꿀수도 있었고,
근대 즈음에는 일왕까지도 '30분' 쉬어 간 뒤로, 일왕이 잠시 사용한 서양식 테이블은 집안의 가보가 되었다고 한다.
(일왕의 방문을 위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양식'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이 집의 주인은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일왕은 서양식 제복에 자신의 서양식 의자를 갖고 여행을 했기에,
집 주인은 의자 없이 테이블만 만들어야 했다.
당시, 주인은 못머리를 치는 행위가 일본의 머리라 할 수 있는 일왕을 치는 무엄한 행위로 간주했고, 못없이 조립식으로 테이블을 만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 사진의 테이블이 바로 이 집안의 가보가 된 테이블이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불자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불자리가 다다미와 마룻바닥이 이어지는 위치에 놓이면서
절반은 다다미, 절반은 마룻바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다다미 파트를 보자.
여기에서 가장 불을 잘 쬘 수 있으면서 연기가 적게 오는 자리는 가장의 자리였고,
가장의 자리 옆에 최고는 아니다만, 두번째로 안락한 자리는 시어머니의 자리였고,
시어머니의 맞은편이자, 가장의 다른 옆자리는 보통 손님의 자리였다.
그리고 마룻바닥 파트에서 시어머니의 옆자리는 며느리의 자리였고,
가장 불과 멀어서 춥고, 연기가 많이 가고, 바닥도 딱딱한 곳은 아이들의 자리였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모습이면서,
아이들을 엄격하게 다루어야한다는 생활 습관이 그대로 보여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들은 이야기로는 일본에서는 현재 아이들에게 겨울에 반바지를 입힌다고 한다.
인내심을 키운다는 취지라는데,
아무래도 역사적으로도 이어져오는 관습이 아닐까 싶어진다.
박물관은 영어설명문(!)이 적혀있어서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지.
그리고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버렸다.
(점심으로 이 지역 특산물인 소바와 간장소스를 발라 구운 떡꼬치를 먹었다.
전 날과 같이 특별한 맛보다는,
산 음식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식사였던 듯..)
이렇게 점심을 마친 뒤,
나는 가장 가까운 나기소(Nagiso) 기차역으로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키소후쿠시마(Kisofukushima)에 갔다.
(추마고 전경. 작은 마을..
이렇게 보니, 계곡과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성 유적이라고해서 와봤는데,
유적지라 하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그래도 이렇게 산 꼭대기에서 마을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어딘가!)
이렇게, 기차를 타고 도착한 키소후쿠시마는
지금까지의 작은 역참마을에 비해 '도시'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만-
아름다운 도시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과도기적인 콘크리트 도시의 모습이였다.
한 거리가 옛날 모습으로 복원되어있었다만-
지금껏 추마고와 마고메를 보고 왔더니,
옛 모습을 그저 흉내낸 듯 보일 뿐이라, 흥미롭지는 않았고-
오히려 계곡의 물살과 오랜만에 보는 도시적인 불빛이 내 관심을 끌었다.
(마지막 사진들은 제비집! 새끼들이 꽤 자라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쉽게 지나다니는 1층 처마에 저렇게 둥지를 마련하다니..)
내가 이번에 3일로 다녀온 이 곳은
일본에서도 시골 중의 시골인 모양이였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편의점이 하나도 안보이는 도시에 머물러봤다는 사실에 나도 깜짝 놀랐으니까.
(그나마 큰 편인 키소후쿠시마에서도 편의점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하나도 못찾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놀라움이였다 -0-)
내가 사는 곳은 블럭마다 편의점이 있던데, 이런 곳도 일본에 있었구나!
덕분에 풍경이며, 산세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하며..
여러모로 나에게 만족스러운 여행길이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