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지테리안 (Vegetarian) -Han Kang (translated to English by Deborah Smith)
저번달 영국 옥스퍼드에 출장갔다가
짧은 자유시간에 내가 간 곳은 대학도시답게 큰 서점이였다.
그 서점의 맞은편에서는 작은 행사장이 마련되어 '책'에 대한 홍보와 전시들, 각종 소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행사장에 들어갔다가 발견한 것은 영문으로 번역된 최근(?) 한국소설이였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유명해진 소설가였기에 무척 생소한 이름이였는데,
영문 번역된 한국 소설이 행사장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큰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였다.
소설의 내용을 떠나, 이 소설이 왜 영국 옥스퍼드에서 소개되는 것일까- 궁금함이 일어나 바로 구입해버렸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보다, 그 내용을 곱씹어보는데 배 이상의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소설에 해당되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 충분히 '토론'을 유발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극단적인 상황들을 나열했고,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불편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내 감정이 이입되질 않는 다는 점이였다. 이해불가능한 행동, 불안감, 모순.
매우 강하게 뒤틀려버린 '자기중심'이 타인의 기준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고, 그로인해 주변인들의 평범함이 위협을 받기에 이른다.
책 제목, 채식주의자는 사실 일반적인 채식주의자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자기의 주관을 주변에 아랑곳 않고 관철시키는 극단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듯 했다 (한국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려나..) .
(책을 다 읽고 바로 얼마 후, 베지테리안 영문번역이 맨부커상이라는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옥스퍼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정말 인기가 있어서 였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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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부터 한 여인은 꿈을 꾼다. 그다지 좋은 꿈이 아니라서 잠을 잘 수 없다.
그녀가 왜 그 꿈을 꾸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꿈에 대한 그녀의 대응은 극단적이였다. 고기를 끊더니, 이내 모든 식단을 끊는다. 가슴이 답답해서 모든 겉치레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그녀의 이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은 주변인들을 모두 거칠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녀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꿈을 이해할 수 있는 무엇도 없고, 그녀를 도와주는 이도 없다. 하지만 소설속에서 그녀는 사실 '가해자'에 속했다. 그녀의 '무언'과 '금식'의 선택으로 인해 그녀의 가족들은 파탄나버리기에 이르르니까.
목석같았던 그녀에게 욕정의 감정을 일으킨 단 하나의 기제는 그녀를 하나의 꽃으로 만들어준 형부의 바디페인팅이였다. 그녀는 꽃에 집착해서, 형부는 몽고반점에 집착해서 이성을 놓아버리기에- 소설은 사실 이런 모순이 마치 누구에게나 매우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것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해낸다.
먹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의 수명을 이어가도록 강압하는 그녀의 언니. 그러나 사실 언니는 동생이 미쳐가는 것을 보기만 할 뿐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언니가 아무리 과거를 되씹어 본들, 동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던 순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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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중간까지 읽던 나의 소감은... 무라사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연상케하는 분위기란 점이였다.
이해 할 수 없는 여인의 행동, 성적인 관계들을 통한 이야기의 흐름, 정적인 분위기등이 그것을 떠올리게 하던 것이였다. 물론, 표현, 상황등은 모두 다르지만..
책을 덮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내가 느끼는 소감은.. 역시나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책은 아니란 점이다. 하.. 너무 극단적이다. '환상이야기'라고 분류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 정도니까. 이야기의 흐름, 기제와 기폭의 순간 등이 무척 잘 표현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글로 보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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