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7

행성과학을 하는 사람 1 - 불만

1. 돈 크게 벌 생각 일찍 접으면, 상관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초등학생 때, '과학자'를 할거야라고 말하던 때부터, 이미 돈은 살만큼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솔직히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능력/인맥/운의 삼박자이 맞는 이는 매우 풍요로운 생활도 할 수 있다. 다만, 세계적으로 이런 자리는 몇 없으며, 거기에다 그만큼 일하는 시간은 늘어나므로 돈 때문보다는 명예욕에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추구하게 된다.)
2. 장기 직장이 거의 없다. 단기간 계약직. 항상 다음 직장 혹은 다음 연구 프로포절을 찾아야 한다. 욕나온다.
3. '휴가'라 해도 정말 일을 놓지 못한다. (놓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1번같이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휴일에도 일해야 뭔가 돌아간다. 아니면, 그냥 삽질하는 일이 있는 경우에도 휴가에 쉬지 못하고 일하게 되거나.)
4.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특히, 논리적인 영작과 영어 토론을 해야 한다.
5. 갑자기, 한 노장이 일어나 '그게 아니야!', '나는 못 믿어! 잘 못 된 연구야!'라고 말하고 보는 경우들도 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큰 상실감에 시달리게 되던데. 더군다나 이런 공격을 학회장에서 공개적으로 받는 경우도 여러차례 봤다. 나는 과연 언제쯤 슬기롭게 대처할수 있을까? 감정적인 부분을 다치지 않고 '사실'에 대한 것만 걸러서 듣는 법을 배워야 할텐데.
6. 보스의 원조에 크게 좌우된다.
7. 이 분야는 인맥이 최고다.
8. 해외 출장은 여행이 아니다. 일하러 이틀 비행기타고 왔다갔다하고, 시차 적응에 수 일을 날려먹으나, 그러한 시간들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9. 100% 능력제이자, 99.9%의 행운제이기도 하다.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변수에 따라 천재가 둔재가 되어 퇴화될수도 있다. 무능한 상사/오류자료처리/뜻밖의 사건(예, 준비한 우주 탐사선의 실패) 등등. 수많은 이들이 '운이 나빠' 제실력 못키우고 나자빠진다. 만약, 그러한 상실감에 실질적인 조언을 주는 멘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가장 큰 행운! 멘토 있는 사람은, 복 받은 거다.
10. 언제나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경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너무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다. 무엇을 파고 들지, 포기할지 - 실현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
11. '자금'을 따야한다. 어떻게 하는지 봐두고 싶다.

댓글 4개:

  1. 과학계에 발을 막 들여놓은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고민이네. 단기직장으로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게 가정을 생각하면 참 힘든 점인거 같아. 그래서 정말 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애.

    p.s. 댓글을 입력했는데...사라져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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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으.. 댓글이 사라졌다니...ㅠ.ㅠ 이거 블로그스팟이 영 불편해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려나- 고민이네요.
      그나저나, 일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니 좀 부끄러운데요^^;;;
      저에게는 사랑이라고 하기보다는...좀 다른 감정 같아요. 어떤 것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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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느정도는 '일반적인 직장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 2,3,6,8,9번은 특히 한국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난 작년 즈음에 직급이 자리를 잡기까지 참 힘들었던거 같아. 나이를 먹으면 안정적이 되어갈꺼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것 투성이고 새로운것이 솟아나더라고. 불확실한것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만 가지고 일을 하려니 막막할때도 많고. 윽.. 쓰다보니 우울해진다 ㅋㅋ
    이렇게 평생 되는것과 안되는것과 왜 안되는가에 대한 고민만 하다 가는거 아닌가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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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언니를 본 듯 싶어 어찌나 반갑던지 몰라요!
      으흐흐흣.

      언니의 말을 들으니, '일'이 되면 언제나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는 모양이네요..
      깔끔하게 분명하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저는 지금 풀어내야 하는 문제 덕분에 절절하게 깨닫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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