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7

극권의 개썰매 몰기 (Being a musher)

춥고 어두운 이 척박한 극권에 도대체 키루나라는 도시가 어떻게 발생해선, 2.2만명(2019년)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있을까? 이는 간단한 해답을 갖고 있다. 바로 지하자원이다. 이미 수세기 전에 철광산의 존재가 알려졌었으나, 키루나는 쉽게 일하러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였다. 19세기 말이되어서야 철광채굴 비용이 절감되는 기술이 마련되고, 철로가 연결되면서 키루나의 철광산업이 부흥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로 키루나는 유럽내 최대 철광생산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철광업을 제외하면, 키루나 시의 두 가지 좀 더 작은 규모의 중요사업들로는 우주연구와 관광사업이 있다. 우주연구가 바로 우리를 키루나에 오게 만든 이유이고, 관광산업은 겨울철 극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생활과 자연의 볼거리를 파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춥고 어두운 키루나의 겨울에 도대체 무엇을 관광하러 오느냐면, 뭐니뭐니해도 오로라를 보기위해 오는 관광객이 많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스포츠 활동들도 있다. 예를 들면, 크로스컨트리 스키, 개썰매, 스노우모바일, 빙벽등반 등을 하기위해 키루나에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관광지답게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면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 등등 스웨덴어 이외의 언어들이 들려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나 역시, 키루나 생활 첫 달이니만큼, 키루나의 겨울특색을 제대로 누려보기 위해 개썰매몰기에 나섰다. 다양한 개썰매 관련 활동들 중에서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2명이 한 조를 이뤄서 번갈아가며 개썰매를 모는 활동이였다. 낮시간대에 따뜻한 점심이 포함되어 있으니, 혹시라도 추우면 중간에 몸을 녹일 수 있는 시간이 있어보였고, 무엇보다도 내가 개썰매를 몰아보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이 큰 기대를 품게 했다. 피곤함없이 개들과 놀 수 있는 조건이라니!

우리가 선택한 개썰매 업체는 키루나에서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서, 덕분에 우리는 드디어 키루나 시 밖으로 첫 나들이(?)를 나가는 셈이였다.

나름 따뜻하게 중무장하고 갔으나, 업체에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옷과 신발, 그리고 장갑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개들이 신발에 오줌을 지릴 수도 있고 땅에 싼 똥을 쉽게 밟을 수 있어서라고 하니,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어떤 개들은 양말을 신고 있다.
투어전 개들의 발의 상태를 확인해서 양말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하 30도 이하의 날씨의 경우엔 모든 개들이 양말을 착용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개썰매를 조종하는 법에 대한 레슨을 듣는 동안, 썰매당 5마리의 개들이 배당되어 자리를 잡아 기다린다.


(나긋나긋 졸음이 오는 듯. 마치 한여름에 일광욕하는 듯한 모습이구나.)

(오드아이였던 메리제인.
결코 사진에 쉽게 응해주지 않아서 결국 이런 이상한 표정 밖에 못 찍었다.
썰매가 멈출 때 마다 발라당 눈밭을 뒹굴고, 투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쓰다듬을 요구하던, 사랑스런 썰매개)

오늘의 정오 개썰매 투어팀은 총 4쌍이였다. 가장 먼저 가이드가 눈상태를 확인하며 개썰매를 몰고 나서면, 차례로 개썰매를 몰고 따라 나섰다.








개썰매를 처음 몰아보며 놀란 것은 개들의 "힘"이였다. 썰매위에서 보니, 개들이 총총총 매우 가볍게 산책하듯 뛰는 것에 첫번째로 놀란다. 이런 총총걸음에 성인 두 명이 탄 썰매가 순식간에 끌려간다건 놀라운 경험이였다. 그리고 개들의 달리고 싶은 본능에 두번째로 놀라게 된다. 마구마구 달려나가고 싶어해서, 얘들을 말려야한다(!). 썰매를 모는 사람이 브레이크를 밟아서 개들의 질주본능을 저지시키지 않으면, 초기의 흥분에 마구 달려버려서 나중에 집에 돌아올때는 지쳐버린다는 거였다. 앞 썰매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잠깐이라도 썰매를 멈추면 개들은 아주 잠깐은 기다려줄지 몰라도 조만간 마구 불평을 퍼부어댄다. "아우~!!! 아우!아우!" 소리로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것이였다. 마치, "왜 안가! 좀 달려야지! 심심해!"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듯한 상상에 빠져버린다. "Let's go!"라고 아우성치는 얘들을 출발시켜야 드디어 조용한 눈경치로 되돌아간다.

맨 앞에 달리는 가이드의 썰매가 눈길을 다져줘서, 뒤이어 달리는 썰매들은 나름 쉽게 달릴 수 있다. 사진으로는 썰매길 옆의 눈 높이가 쌓인 눈의 전부같이 보인다만, 썰매로 다져지지 않은 길 가장자리에 서면, 순식간에 무릎 혹은 허벅지까지 눈속에 파뭍혀버린다. 





우리는 운좋게 눈내리지 않는 날이어서 저 멀리 스웨덴의 가장 높은 산(2000m를 넘으니, 한라산보다 약 100m 더 높다)도 볼 수 있었고 햇빛에 일렁이는 상층운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만 강풍과 갑작스런 heat wave에 영상 4도까지 날씨가 따뜻해진 날씨였다. 이런 갑작스런 상온의 날씨엔 눈이 질퍽해져서 개들이 썰매를 끄는데 더 고생을 한다고 했다.

약 2시간의 썰매타기를 마치면, 우리는 가이드에게 배운대로 개들을 한마리씩 썰매에서 풀어주며 마사지를 해줬다. 하나씩 앞다리에서 등을 거쳐 뒷다리까지 만져주며 "잘했어! 힘쎄네! 잘생겼어!" 알아듣든 말든 칭찬을 퍼부어줬다. 얘들은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참 기분좋아하며 쓰다듬을 즐긴다. 근육질의 몸을 내 무릎에 기대니까 썰매를 끌던 힘의 근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오드아이인 메리제인은 자기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쓰다듬을 즐겨서 어찌나 귀엽던지-.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개였다.

(썰매 투어를 마치고 쉬는 개들)

썰매개들을 모두 집으로 들여보낸 뒤에는 '티피'라고 불리는 사미족의 텐트안에 따뜻한 화롯불 주변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따뜻한 장소에서 토마토 치즈스프와 polar bread cheese sandwitch, 방금만든 커피와 시나몬 롤까지 먹고나면 몸도 뱃속도 든든해진다. 따뜻해져서 여몃던 겉옷을 느슨히 열며 가이드와 관광객들은 이야기잔치를 만들었다. 스톡홀롬에서 온 관광객부부, IKEA의 IT팀에서 일하는 인도인 4인 친구무리들과 영국에서 노르웨이를 거쳐 관광중이라는 커플까지. 두런두런 키루나 혹은 스웨덴 경험을 이야기한다. 여행을 많이 한 느낌을 뿜뿜하던 스웨덴 부부에게도 키루나는 신기한 장소라고 하니. 하하하! 우리가 정말 외진 곳에 온 것은 확신한 셈이다.

(점심까지 마친 뒤에는 puppy들 우리에 들어가서 질컷 강아지들을 귀여워해줄 수 있다.
저 말썽꾸러기가 뭍어나는 눈빛을 보라!
꾸부리고 앉아서 쓰다듬던 사이에 몇몇 애들이 뒤에서 내 포니테일머리를 물어당겨 고무줄이 끊어져버렸다.
그럼에도 어쩌랴. 사랑스럽게 포동포동 걸어다니는 - 그 누구도 거부못할 귀여움이다.)

2022/02/23

키루나에서 본 첫 오로라


키루나가 북극권(Arctic Circle)안에 들어있는 도시이다보니, 지리적으로 희귀한 자연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겨울이면 해가 하루종일 뜨지않는 극야와 여름이면 해가 하루종일 지지않는 백야현상이 발생한다. 2월말인 지금은 딱 극야와 백야 사이의 절반정도이다보니, 해가 뜨는 시각이 하루 하루 빨라지는 것을 실감한다.
밤하늘을 보면 깜짝 놀란다. 작은 곰자리와 북극성이 거의 머리 꼭대기 근처에 위치했다! 내가 알던 저위도-중위도와는 전혀 다른 지구의 위치에서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극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현상은 바로 오로라가 아닐까. 

값싼 교통편 없이 추운 극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니, 아무래도 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쉽게 보러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셈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일이다. 어쩌다가 출장이라도 가거나 파견근무라도 나가게 될지! 꼭 아주 나중에, 돈 많고 시간 많은 은퇴한 뒤에만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테니까. 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살아있는 동안 보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에는 오로라가 항상 자리잡아 있었다. 

그리고 그 "혹시나"는 정말이 되었으니! 

뜻하지 않게 키루나에 온 덕분에 나는 드디어 소원성취할 기회를 잡은 셈이기도 했다.

(저 둥근 가로등들이 운치는 줄지 몰라도, 광공해의 원흉이다)

다만 멋지고 강력한 오로라를 보기위해서는 맑은 밤하늘과 강력한 태양활동이 함께 필요하다.내가 아무리 극권에서 매일 밖에 나가 기다린다고 한 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오로라는 볼 수 없다.

안타깝게도 키루나의 하늘은 대체적으로 구름이 잔뜩 끼거나 끊임없이 눈을 내렸다. 또한 키루나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광공해가 엄청났다. 텅 빈 거리의 불필요한 불빛때문에 약한 강도의 오로라 빛은 광공해에 다 가려져버리고 마는 거다.

(조명 덕분에 반짝이는 눈)
 
(눈이 사진을 찍던 이 당시에도 많이 왔다만, 지금은 더 많이 쌓여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피곤해서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린 날이 있었다. 아아....! 강력한 오로라가 아주 잠깐 자정의 하늘을 아름답게 비췄다며 지인이 집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도시의 광공해에도 보란듯이 밝은 오로라의 모습이라니! 3년 전에 키루나에 왔다는 지인의 말로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강한 오로라였다고 한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의욕충만해져서 매일 두 개의 오로라 예보앱과 근교의 무인카메라 사진을 살펴보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선명한 초록의 굴곡진 빛이 키루나 도시 하늘위로 펼쳐진 것이였다. 나는 준비된 카메라를 들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수 백 미터만 걸어가면 교회공원에 도착하는데, 시내 중심보다 훨씬 어두워서 오로라보기에 훌륭한 장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나의 오로라는 초록색이였다.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밤 하늘 절반을 가득 뒤덮더니, 조만간 사라지고. 다시금 넘실넘실 파도치듯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빠른 모양, 크기, 밝기의 변화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자태였다. 저 자태가 100키로미터 고도 이상에서 나타나는 일이라니...!  약 30-40분정도를 영하 20도이하에서 장갑도 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손이 곧 아려왔다. 결국 오래 밖에 있지는 못하고 따뜻한 실내로 돌아왔다만, 드디어 오로라를 보았다는 흥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초록색 오로라가 가장 흔하게 관측되는 색이라고 한다. 붉은 색과 푸른색 오로라도 아주 가끔 발생한다고 하니, 다른 기회에 어쩌면 다양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내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의 일부분)

안타까운 것은 광각렌즈가 없는 바람에 내 카메라로는 오로라의 정말 일부밖에 담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였다. 오로라의 밝기는 생각보다 밝아서, 삼각대 없이 핸드폰 카메라로도 문제없이 잡힐정도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와 키루나 성당)


 

대전 생활 1년

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