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3

라면에 대한 기억

나의 기억속- 라면은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라면을 가끔씩이나마 끓여먹던 것은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 불과했다.
맞벌이 부부이셨던 부모님과 고학년이였던 언니가 집에 없어서 혼자 밥을 해먹어야 하는데 마땅히 먹을 것이 없으면 라면에 손이 갔었다.

언제부턴가, 라면은 나에게 좀 멀리해야 할 식품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5분만에 만들게 되는 빠른 속도는 정성이 없어 보였고,탄수화물과 염분 과다 섭취는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허나, 바로 위의 말들은 나의 라면에 대한 거리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솔직 단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라면은 "아버지가 수시로 만들어먹던, 좋아하시던 식품"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건강이 많이 좋지 않으셨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다고 운동을 안하시던 아버지.
 그러한 몸상태로 종종 라면을 끓여드셨다.
먹을 것도 없고, 라면이 가장 좋다나...?
그러한 아버지는 나에게 자기자신을 포기한 듯 싶어보였다.
고혈압으로 고생하면서 왜 고염분으로 유명한 라면을 좋아하는가?
신선한 야채, 운동을 멀리한 채, 왜 그렇게 자신에게 안좋은 음식을 제공하며
자신의 건강을 헤치느냔말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
내 건강은 스스로 챙긴다는 의무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불량 먹거리인 라면은 가장 먼저 퇴출마땅한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라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대학 졸업후에도,
그리고 독일에서도, 일본에서도 이어져나가다 보니,
나는 라면을 멀리할 뿐이였다.

그런데 라면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은 모두가 라면을 좋아할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한국의 친구와 지인,
그리고 심지어는 나의 가족들까지도
나에게 보내는 소포나 방문 기념 선물에는 항상 라면이 끼여있었다.
고맙다고 받기는 했으나, 처치방법이 없어서 그냥 쟁여두다가 일 년 넘게 지나도록 안먹고 버리게 되곤 했다 (라면 유통기한 의외로 짧아서 반년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에서의 생활에서도 이어져서
라면은 그다지 나에게 반갑지 않은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받게 되어 처치곤란이 되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매우 오래간만에
맛있는 라면이 먹고 싶어서 끓여먹게 되었다.
봉지 뒤의 설명에 적힌 정량의 물에
송송 썰은 파도 넣고
적당한 시간을 끓여 내니,
쫄깃한 식감에 뜨거워도 꼭꼭 씹어 먹는 맛이 생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어머니가 손수 담가주신 김치를 꺼내서 얹어먹으면
좋아하지 않는 그 무엇도 다 맛있는 음식으로 변해버린다.

별다른 노력없이 쉽게 만들어
휘리릭 먹어버리게 되는 라면.
강한 분말스프의 맛...
이 자극적인 맛을 아버지는 좋아하셨던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이해하지는 못하겠지.
왜냐면 아버지는 '가장 빨리 라면을 끓이는 방법'을 나에게 전수해주시곤
이제 더이상 이야기를 나눌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기일인 오늘.
나는 라면을 먹으며 아버지를 기리는 셈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제사음식준비로 바쁠 텐데
오늘 저녁에는 집에 전화라도 해야지.


댓글 4개:

  1. 보낼만한게 라면이지... 라면 말고 다른걸 보내달라고 미리 얘기를 해 두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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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 이거 뭐야... 뭐가 많이 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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