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2

루퍼 (Looper) - 모순된 타임슬립 영화

높은 평점에 기대를 갖고 봤던 것 때문일까?
영화속의 모순에 의문만 잔뜩 갖게 된 것 같다. (스포)

루퍼란, 새로운 킬러의 이름으로 30년 미래에서 보내진 자를 즉결처분하는 일을 한다.
죽여져야 하는 이는 포박되어 머리에는 흰 두건을 씌웠기에 누군지 알 수 없다. 다만, 보내지는 시간만이 정해져있다. 30년 후, 발전된 과학으로 인해 미제살해사건이 존재할 수 없게 되자, 범죄조직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처분하기에 이르른다. 루퍼의 계약해지는 자기자신을 죽이는 것인데, 모르고 죽이겠지만, 그것이 자신일 경우, 금괴가 따라온다. 30년 간, 시한부 인생을 풍족히 살만큼의 돈이 주어지는 것이다. 별다른 꿈없이 흥청망청 살고자 하는 이에게라면 꽤 달콤하게 들릴만한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기본 전제를 정면으로 모순되게 만드는데,
바로 미래의 조의 상황이 그러하다. 조는 루퍼의 계약 해지 후 (미래에서 보내진 자신을 청부살해), 중국에서 살면서 번 돈은 마약으로 다 날리고 범죄조직에 빠져버린다. 오랜 세월동안의 의미없는 삶에 한 여인이 나타나고, 그 여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만듦으로서 삶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루퍼를 없애고자 하는 레인메이커일당에게 잡히는 동안... 부인이 살해당한다! (어랏)

다른 모순들도 다수등장한다.
루퍼를 없애고자 하는 레인메이커일당은 부인처럼 조도 죽일 수 있으면서, 조를 굳이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고 열심히 타임캡슐까지 데려와 금괴까지 달아준다.
레인메이커라는 보이지 않는 테러리스트는 루퍼에게 어머니를 살해당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복수를 위해 루퍼들을 과거로 보내며, 친절히 금괴들을 달아서 보내주는 모양이다.

영화 막바지에서는, 조는 자신의 현재에 와있는 미래의 자신이 레인메이커의 어머니를 죽이면서 레인메이커가 복수심에 불타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판단하고 자살을 하지만, 이는 참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가 레인메이커의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던 미래에서 레인메이커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러니저러니해도 레인메이커는 (다른  루퍼에게 어머니를 희생당해서?) 테러리스트가 되다는 것 아닌가.

30년 미래의 조가 현재 조의 일에 간섭하면서 조는 더이상 중국에 갈 일이 없어졌을 텐데 (흥청망청할 돈이 없으니), 어떻게 여전히 미래의 부인을 만나는 기억에 변함이 없을 수 있을까?
과거의 내가 갖게 되는 상흔은 바로 남으나, 기억을 바로 바뀌지 않는 위대한 영화적 장치가 아닐지 (새로운 기억들이 더해지는 것은 묘사된다).

사실, 연기력과 모티브는 매우 좋은 영화다.
만약 미래의 조가 삶에 집착하는 것을 굳이 부인살해때문이 아니라, 부인에게 닥치던 위기의 순간을 보기만 할 뿐 (일관성을 지키기위해 부인도 과거로 보내는 설정),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 한 채로 과거로 보내져버렸던 것이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굳이 초능력자 레인메이커를 넣은 이유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미래의 비주얼에 참신함을 넣지 못하곤, 초능력을 넣어 영화적인 특수효과를 만들려고 한 듯 싶다. 2044년, 2074년의 미래들이건만, 현재와 너무 똑같아서 투박할 정도다. 투명한 티비, 공중부양 오토바이, 드론형 물주는 기계, 눈에 넣는 마약을 제외하곤. 식당 종업원, 클럽, 자동차, 총, 지도, 도끼, 집 구조, 장난감, 주방... 살아가는 환경은 많이 안좋아진 듯 싶다만.

충격적인 특수효과라면, 조의 친구가 사지를 잘라지는 동안, 그 친구의 30년 미래의 모습이 아무런 아픔도 없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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