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4

감정이 생각을 이끌어가는 이런 부조리한 상태

#1.

내가 보기에, 현재의 나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 듯 싶다.
생각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것과 전혀 반대로-
감정에 이끌려다니는 생각때문에 과대망상은 과대망상대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문제는 의사소통이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다보니 생기는 결과가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3주 전에는, 의문이 의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심지어 가장 중요한 신뢰까지도 무너지는 바람에 참 힘든 한 주를 보내야 했었는데-
그것이 또, 우습게도, 한 마디 말에 그냥 다 봄바람에 날려보내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만, 그 연결고리만큼은 깨뜨려 내 과대망상을 종료시켜준 듯) 일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는가 하면...
도대체 상대가 무슨의미로
특정한 말을 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혹은 이상하게 상상하다가 ... 다시금 완전한 이해를 포기하고 나서야 나의 일상적인 루틴으로 되돌아온다.

#2.

정확한 언어소통이 많이 어려워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사실 정말 별거아닌 것도 있다.
'~가 내가 "반드시" 축하 회식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한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유나 끝말은 권유인데, 내용은 필수?
평소라면 큰 문제가 아닐테지만, 그 회식 장소가 편도 3시간 거리이며, "~"가 여기의 가장 높은 지위의 그룹리더였고, 나는 그 날 다른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있다.
혼란스러워지는 거지. -_-;;;
나는 다시금 메세지를 전해준 사람에게 가서 되물어야 했다.
그것이 '의무'인지, '선택'인지.

이건 나 자신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실수인 듯 싶다.
정확한 소통을 만들 수 있도록 문장의 구성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3.

내가 단 한 명의 외국인이다보니, 작은 소그룹 세미나가 있게 되면,사람들은 자연스레 일본어로 내용이 진행되어 버린다.
그것 자체에 대해 나는 이제 딴지 걸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만- (일본어 공부의 절호의 기회인지도)
소외된다는 감정, 그리고 공부가 되는 내용을 전해듣지 못하면서 도태된다는 감정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
나는 결국-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라도, 앞으로 꼭 하나 이상씩 영어로 해서 사람들에게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주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나름 생각하게 된다.

내 연구실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이것은 여기에서 어쩔 수 없는 나의 숙명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4.

어제는 처음으로 일본의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오른손 집게손까락 관절이 일주일 전부터 슬슬 아파오더니, 펜을 잡고 쓰는 것이 힘들어지고 연습장 한 장을 쓴 뒤에는 찌리찌리한 통증이 이어지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였다.
한 창 공부할 거 많아서 펜을 많이 쓰고 있는 와중인데,
(손가락에 힘을 너무 많이 준 것이 탈이였던 것 같았다.)
파스를 붙여도 소용이 없었다. 관절에 염증이 생긴것은 아닐까- 공부할 것 많은데 여기 진통제라도 처방받아서 먹으려고 병원행을 결심했다.
다행이라면 비서님께서 같이 가 주셔서 문제는 없었는데-
헛....
사고 없었다는데도, X-ray도 두 장이나 찍고,
'뼈에는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희소식(?)도 듣고 나서야,
염증이 있는 것 같다며 염증약 일주일치 처방을 받고, 관절에 '이렇게' 테이핑을 하라며 임시처방도 배워왔다.

평소에는 우리 연구실 사람들이 나에게 무관심(이라기 보다는 나=영어로서 회피하는 듯 싶은....;;;;)하다고 느껴왔었는데
이 날, 나를 다 챙겨주시던 비서님이 참 고마웠다.
거기다가 다음 날에는.......
이거, 손가락 염증이 -_- 뭐, 연구소 내에 소문이라도 퍼졌는지,
사람들이 '병원갔다며!'라며 안부를 물어봐주는게 아닌가.
아. ㅠ.ㅠ 감동.
(속으로는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병원이라도 간 줄 아는 듯 싶어 적지않게 당황했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구나.

외로움과 행복감의 종이 한 장 차이.

댓글 8개:

  1. 3번... 너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매우 중요한 것 같아.

    그나저나, 너무 연구소에서만 매몰되어 있지 말고. ㅎㅎ 의사소통은, 너무 소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너가 외국인이니까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우기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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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사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세미나를 못알아듣는다는 사실이야. 세미나를 통해서 여러가지 새로운 것을 많이 듣거나 배우게 되는 거였는데, 도태될까봐 염려스러워, 이건. 어떻게든 대책을 찾아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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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감! 이라는 버튼이 있으면 누르고 싶은 그런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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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감'이라는 상록수님의 댓글에 힘이 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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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윤영직29/4/13 22:51

    안녕하세요. 2번째 방문하였는데 심히 공감하고 있는게 있어서 지나칠 수가 없군요..
    저도 작년 9월부터 동경대에서 포닥하고 있는 1인 입니다.
    일본 생활한지 8개월이 되어가지만, 일본어에 집중하여 공부할 시간은 없고, 프리토킹이 되지 않는 저도
    연구실에서 일본어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랩미팅을 할 때 저는 제 차례에 영어로 발표하고, 나머지 시간에 일본인들 일본어로 발표하고, 디스커션 하는거 지켜보고
    있습니다. 들어보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아직 한계가 있네요. ㅠㅠ
    한달에 한번은 일본의 한 기업과 5시간 동안 회의를 하는데..그 때도 저는 영어로 발표하고..나머지 4시간 반 동안은 일본어
    쓰나미를 경험한답니다. ㅠㅠ

    저도 님이 3번에 적어 놓으신 대로 딱!! 그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잘 이겨나갑시다..
    연구실 생활..일본 생활..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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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번주도, 오늘도, 세미나들은 일본어로 진행이 되었죠.
      안타까웠던 것은 오늘의 세미나는 정말 제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주제였는데....!!
      아쉬움에 계속 질문을 하다보니, 질답시간의 절반은 영어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_-;

      사람들과 일상적인 말을 천천히 주고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세미나같은 기회를 통해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포닥에게는 정말 중요하잖아요?
      종종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라는 괴리감에 빠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윤영직님의 말씀처럼 이겨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게되죠.

      여기의 사람들이 분명 매우 잘 아는데, 저에게만 이야기를 못해줄 뿐인거니까-
      '내가 그걸 언젠가 이해해내거나, 스스로 알아서 풀어나가며 독립심을 키워나가 보자'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연구실생활 화이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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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학교 상황이 오버랩되는데?
    외국인이 몇명 있지만 한국사람들은 한국어로 얘기하고 세미나 하는 상황이 자주 있었지.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니 그 부담감에 한국 학생들은 외국인과 어울리는 걸 사실 좋아하지 않고.
    나는 외국인들과 친분이 있다보니 내 주변 학생들의 배려없음에 실망했지만 그걸 또 한국 학생 탓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아직 국제화에 대한 준비가 안된 상황이 문제지. 결국 외국인으로 산다는 필수적인 외로움을 동반하는 것 같아.
    근데 세미나는 영어로 진행해달라고 요구 할 수 있는거 아닌가? 우리도 외국인이 한명이라도 끼면 세미나는 영어로 무조건 진행하는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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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교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연구소도 이럴줄은 몰랐었죠...ㅎㅎㅎㅎㅎ;;;
      다행이라면 여기 학생들과 사람들이 영어에 대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사실 한 명 한 명 착해요.
      그래서 함께 이야기 할 때면, 천천히 들어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도 있죠.
      세미나는... 그냥 포기했어요. 외국인이 4-6명 있을 때도 일본어로 진행하니까요.
      이제는 외국인 발표자, 혹은, 잘 아는 주제의 내용일때만 들어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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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