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1

나는 왜 종교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한가

내가 나에 대해 한가지 발견한 것이라면,
한국의 개신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필요이상의 흥분을 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정신적인 폭력을 일삼는 선교가 생각나선, 반감을 너무 열심히 표현한다.
이럴 필요가 없는데....
나는 종교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아무래도 일체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왜 내가 굳이 한국의 개신교에만 열열한 비신도가 되는 현상을 되풀이하는 가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타종교에 대해 폭력적으로 배타적인 모습에 심한 실망을 하게 되었던 까닭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도 어린시절에는 교회를 주말마다 열심히 나갔었고,
절반의 친척이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나는 어린시절부터 종교에 대한 별다른 신념이 없이 지냈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종교'가 그렇게 큰 장애물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여호와의 증인이었지만, 그 친구와 문제없이 무척 잘 지냈었다)

사실 어린시절부터 종교의 겉멋에 홀려서;;;
나는...
교회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고,
한 달 동안은 성당에 나가며 성수를 찍어 십자긋기 하기를 즐기다가,
절에 나가선 친구를 쫓아 불교식으로 절하는 것도 따라하고,
이집트에 갔다가, 하루 5번 경건하게 메카를 향해 절하는 신념있는 모습에 반하기도 했었다.

종교란, 자신의 평화와 타인과의 화합을 찾기 위함이고
개인의 선호에 따른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하기시작했던 10대가 아니였던가 싶다.
그래서 도덕교과서에 나온 종교인들의 화합이란 제목아래 나와있는 사진을 보며,
'아, 그래! 종교란 바로 '평화'를 위한 것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교를 통해 나라의 통합을 추진했던 역사이야기들을 읽으며,
종교의 힘에 감탄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나의 종교에 대한 관념에 대해...
찬물을 끼엊은 것은 다름아닌 심하게 배타적인 개신교도의 모습을 보면서 부터였다.
미술시간 숙제로 석굴암의 불상을 그린 나에게, 아버지는 '잘그렸구나! 그런데...(기독교 장로이신) 할머니에게는 보여드리지 마렴'이란 말을 해주시던 것,
아무런 필러링없이 타인에게 오싹한 저주(지옥에 떨어진다)를 퍼붓는 모습이나,
관심없다고 하는데도 달려서 쫒아오며 전도하던 또래의 학생의 모습에선 질겁을 했고,
기차안에서는 결국 말싸움까지 하게 되었던 한 청년의 모습,
등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들 내 뇌리에서 사라지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이였던 다른 것은,
타 종교는 물론이거나와, 심지어 같은 종교안에서도
편을 갈라 싸우던 모습을 10대 후반과 20대에 들어서 알게 되면서 받은 '충격'이였다.
'종교가- 평화가 아니라 싸움을 추구할 수 있구나' 라는.

그것에 쐐기를 박아준 것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보면서였다.
코란을 불태우는 미국의 개신교도들과,
이에 대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복수를 하겠다는 이슬람세력의 모습.
부모에 의해 주입식 종교를 전수받는 자녀들의 모습이 얼마나 비이성적인가.

더불어 나는 필요하지 않은 선교의 활동들이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사그러지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하며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도움'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상대를 바꾸려는 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헌데.........
오늘,
나는 한국의 개신교 이야기를 꺼냈다가, 불필요하게 반감을 드러내고 말았다.
옆자리의 다른 외국인 친구가 개신교임을 잠깐 잊고 말이지....-_- (제길....!! 내가 반감을 가진것은 '한국의 개신교를 선교하려는 목적을 갖고 나를 대하는 사람'인데. 나중에 옆자리 친구가 개신교도임을 깨닫고 '아차'싶었지만... 이런.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나는 혹시 광'비신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상대가 어떤 종교를 가졌든, 그것에 만족하고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 이상은
상관없는 것인데.
내가 스스로 상대에게 종교적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먼저 표명하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하다보면, 친구 혹은 남으로 결론이 나에게 되는 것 아닌가.

오늘부로-
나는 종교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함을 깨닳았으니,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한 번 더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

댓글 6개:

  1.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종교를 practice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식 복음주의의 전도방식은 정말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논문도 많아요. 한국 기독교는 왜 이렇게 유별난가...에 대해서. ㅡㅡ; 아프리카에 가서도 만나는 한국 사람들의 절반은 선교사더라고요...대체 이 작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을 많이 내보내는 것인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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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답글이 있음을 이제서야 봤어요!
      한국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의문이 생기는 주제가 될 수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종교라는 것이 워낙 강력한 존재이다보니- 그것을 대하는 자세도 조심해야 할텐데 말이예요.
      이 날은, 저 자신부터 조심해야겠다는 반성의 날이였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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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부분은 나와 같구나. 너한테 종교 얘기할때는 조금 안심이겠다. ㅎㅎ 나도 마찬가지로 개신교 쪽으로는 강하게 배타적이라, 다른 사람이랑 얘기할 때 가급적 종교 얘기는 중립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거든.

    그냥 뭔가 마음이 놓인다. 친척과 친구들 대다수가 개신교도인 나에게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도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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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늦게 댓글을 봤어.
      종교얘기는 사실 안하는 것이 상책인 것 같아.
      하고나면 맘이 안좋아져. 종교에 대해 나는 호의적이지 않고, 그리고 신을 믿는 것도 아니지만, 종교가 필요한 사람 역시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른 차원의 폭력이 아닐까 싶어지거든.
      종교가 문화와 별개가 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말야. 상대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취지 정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물론, 이야기가 선교로 가게되면, 나는 분명 공격적이 되어버릴테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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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의 종교관도 반개신교,친불교적무신론자(좀 길지...ㅋㅋ)인데ㅋㅋ공감가는 얘기가 많구만.
    종교얘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나도 모르게 한국의 개신교 얘기에 발끈하는 거 보면 잼있다니깐.
    그래도 난 내문제가 아니라 나를 발끈 하게 만드는 개신교의 잘못된 선교방식, 성장방식을 탓하겠소!ㅋㅋ

    추가로 난 칼세이건의 책들 덕분에 지금의 종교관이 만들어 졌어. 원래 반감이 있다가 고딩때 칼세이건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종교의 악영향이나 허점들을 확실히 알게 되었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개신교에 배타적인 내 모습이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개신교의 배타적인 모습과 닮아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래서 요즘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개신교든, 천주교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려 노력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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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ㄷㅋㄷ...
      우리나라는 개신교의 공격성이 좀 극단화된 곳이기도 하죠.

      오빠의 말에 공감해요.
      개신교의 배타성에 '질린' 탓이라 해도, 그 옹고집스러운 '폐쇄성'이 싫어서 그런거잖아요?
      그러니 스스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이성적인 수준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기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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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2년 6월부터 대전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대전에 도착한 한 달 동안은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대전이 낯설다. 이 낯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