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3

키루나에서 본 첫 오로라


키루나가 북극권(Arctic Circle)안에 들어있는 도시이다보니, 지리적으로 희귀한 자연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겨울이면 해가 하루종일 뜨지않는 극야와 여름이면 해가 하루종일 지지않는 백야현상이 발생한다. 2월말인 지금은 딱 극야와 백야 사이의 절반정도이다보니, 해가 뜨는 시각이 하루 하루 빨라지는 것을 실감한다.
밤하늘을 보면 깜짝 놀란다. 작은 곰자리와 북극성이 거의 머리 꼭대기 근처에 위치했다! 내가 알던 저위도-중위도와는 전혀 다른 지구의 위치에서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극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현상은 바로 오로라가 아닐까. 

값싼 교통편 없이 추운 극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니, 아무래도 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쉽게 보러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셈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일이다. 어쩌다가 출장이라도 가거나 파견근무라도 나가게 될지! 꼭 아주 나중에, 돈 많고 시간 많은 은퇴한 뒤에만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테니까. 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살아있는 동안 보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에는 오로라가 항상 자리잡아 있었다. 

그리고 그 "혹시나"는 정말이 되었으니! 

뜻하지 않게 키루나에 온 덕분에 나는 드디어 소원성취할 기회를 잡은 셈이기도 했다.

(저 둥근 가로등들이 운치는 줄지 몰라도, 광공해의 원흉이다)

다만 멋지고 강력한 오로라를 보기위해서는 맑은 밤하늘과 강력한 태양활동이 함께 필요하다.내가 아무리 극권에서 매일 밖에 나가 기다린다고 한 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오로라는 볼 수 없다.

안타깝게도 키루나의 하늘은 대체적으로 구름이 잔뜩 끼거나 끊임없이 눈을 내렸다. 또한 키루나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광공해가 엄청났다. 텅 빈 거리의 불필요한 불빛때문에 약한 강도의 오로라 빛은 광공해에 다 가려져버리고 마는 거다.

(조명 덕분에 반짝이는 눈)
 
(눈이 사진을 찍던 이 당시에도 많이 왔다만, 지금은 더 많이 쌓여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피곤해서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린 날이 있었다. 아아....! 강력한 오로라가 아주 잠깐 자정의 하늘을 아름답게 비췄다며 지인이 집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도시의 광공해에도 보란듯이 밝은 오로라의 모습이라니! 3년 전에 키루나에 왔다는 지인의 말로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강한 오로라였다고 한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의욕충만해져서 매일 두 개의 오로라 예보앱과 근교의 무인카메라 사진을 살펴보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선명한 초록의 굴곡진 빛이 키루나 도시 하늘위로 펼쳐진 것이였다. 나는 준비된 카메라를 들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수 백 미터만 걸어가면 교회공원에 도착하는데, 시내 중심보다 훨씬 어두워서 오로라보기에 훌륭한 장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나의 오로라는 초록색이였다.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밤 하늘 절반을 가득 뒤덮더니, 조만간 사라지고. 다시금 넘실넘실 파도치듯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빠른 모양, 크기, 밝기의 변화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자태였다. 저 자태가 100키로미터 고도 이상에서 나타나는 일이라니...!  약 30-40분정도를 영하 20도이하에서 장갑도 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손이 곧 아려왔다. 결국 오래 밖에 있지는 못하고 따뜻한 실내로 돌아왔다만, 드디어 오로라를 보았다는 흥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초록색 오로라가 가장 흔하게 관측되는 색이라고 한다. 붉은 색과 푸른색 오로라도 아주 가끔 발생한다고 하니, 다른 기회에 어쩌면 다양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내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의 일부분)

안타까운 것은 광각렌즈가 없는 바람에 내 카메라로는 오로라의 정말 일부밖에 담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였다. 오로라의 밝기는 생각보다 밝아서, 삼각대 없이 핸드폰 카메라로도 문제없이 잡힐정도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오로라와 키루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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