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3

일본에서의 신정

'일본에서는 구정을 안쇤다고?'
한국의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중국과 한국이 구정을 쇠니, 일본도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라는 짐작을 한 듯 싶다.
일본에서 신정만 쇠기 시작한 것이 메이지유신때부터라는 말을 들었으니, 꽤 오래된 셈인데, 우라니라가 별로 일본 신정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구정이 특별한 연휴이듯, 일본에서는 신정이 특별한 연휴가 된다.
직장에 따라  다르다만, 내가 있는 연구소에는 12월 29일부터 무려 일주일을 쉰다!
외국인인 나에게 있어서, 이는 곧 다른 곳에 갈 최적의 기간이 된다. 지난 2년간 신정 때 일본에 있은 적이 없었으니..
올해는 아카츠키 성공으로 인해(?) 어디 갈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처음으로 신정을 일본에서 보내게 되었었다.

최고로 긴 연휴인데, 그걸 마땅히 즐기지도 못하고, 일하며 지내려다보니...
분명 석연치않게 마음이 서글퍼질 것이 분명했다.
그걸 달래볼 생각으로 이번 신정에는 좀 특별한 선물을 나에게 했었다.

그것은 바로 '오세치(おせち)'.
일본 신정 요리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12월 31일에 여자들이 죽어라 여러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3일정도 두고두고 먹는 음식이다. 나름의 좋은 의미로는 여자들이 3일간은 불앞에서 고생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 친구와 이야기를 해봐도, 31일에 만드느라 고생이 바가지라니, 그다지 설득되지 않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옛날 일본 남자들이 신정에, 특별히, 편하게 맛있는 것을 두고두고 먹으려고 지어낸 의미같은?!?). 어찌되었든, 오세치는 분명 일본문화의 하나로서 큰 의미로 자리잡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 재료들에 여러 다른 의미들을 부여되어, 특정 수 이상의 음식들을 준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현대 일본의 변화라면, 가정에서만 만들던 오세치가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구입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들어본 바에 따르면, 아직 많은 이들이 가정에서 오세치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백화점의 오세치들은 고급재료 혹은 서양식과의 퓨전 음식으로 준비해서 화려한 비주얼로 고객을 유혹하는 모양이였다. 물론, 그만큼 가격이 높기도 하다만 (보통, 최저 6000-8000엔에서 가격대가 시작한다), 재료들의 가격이 연말이면 부쩍 상승해서 사실 집에서 준비해도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진다고 하니, 결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였다.

자! 이렇게 해서, 혼자 신정을 보내려는 나에게 백화점의 오세치는 꼭 시도해보고 싶은 일본문화라 할 수 있었다.
 


12월 25일이였던가? 나느 깜짝 놀랐다.
연말까지는 계속 오세치 주문이 가능 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각 백화점/가게들은 준비하는 오세치 세트 수를 정해놓고 예약을 받는 것이였다!

인기있는 가게/백화점의 오세치들은 이미 오래전에 품절이 나버려 있었고,
나는 부랴부랴 검색을 해야했다.

결국 정한 것은..조금 비싸긴했어도, 3단 도시락 형태로 만들어진 오세치였다.
오호라! 신기했다!
위의 사진처럼, 29일 집으로 '냉동 상태'의 도시락이 배달되었고,
상자를 열어보니..



위의 사진처럼 다소곳이 '설명서'가 있다.
각 음식들의 의미가 적혀있는 듯 싶었다.




위의 사진처럼 포장된 도시락 등장.




매우 동양스러운 그림과 형태가 옛날 집에서 보았던 피크닉 도시락을 연상케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도시락을 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

각 단이 비닐포장되어 있는데, 전부 만든 직후 얼린 듯 싶은 모습이였다.
전체를 우선 냉동고에 보관하다가, 먹기 하루전에 냉장실로 옮겨서 서서히 해동하라고 적혀있다. 그대로 따라하니,

짜잔~






왼쪽은 배달 직후, 오른쪽은 해동 후의 모습이다.

전체로는, 위와 같은 사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짠음식부터 달콤한 음식까지,
고기부터 생선까지,
뿌리식물부터 열매까지,
다양한 식재료가 3단에 모두 다르게 담겨있다.

각각, 하나씩, 내가 먹을 것을 담아보니,



오, 한 그릇이 쉽게 가득차버렸다.

사진에서 보이듯, 오세치는 눈을 우선 즐겁게 하는 듯 싶다. 다양한 식재료와 색감이 있으니.
(나는 처음에는 '불을 쓰지 말라고' 만든 오세치니, 차갑게 먹으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그냥 실
온으로 놓고 먹었었다가, 이후로는 데워 먹었다..^^;;;)
맛은 동양의 맛이다보니, 특별하기 보다는 다양한 맛을 누려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몇가지는 생소한 것도 있었다만.



밥과 국은 따로 내가 만들어서 오세치와 즐겨봤다.눈이 즐겁고 입이 재미나니, 홀로 보낸 연말과 신정이 서글프긴 커녕 특별해졌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오세치를 일본에서 산지 3년만에 처음으로 먹어봤다는 충족감이 가장 컸음이 분명하다.

다만....
내가 주문한 것이 사실 2인용이라서 (1인용으로 3단은 없었다. ㅠ.ㅠ)...
같은 음식을 4일간 먹어야 했다는 것이 함정이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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