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5

또 폭설- 그러나 이번에는 집에서다.

어제는 아침부터 함박눈이 쏟아졌다.
기온은 영상인데-
눈이 하루 종일 쏟아지다보니.... 눈은 쌓이고 또 쌓여만갈 뿐,
차로도 인도도... 모두 눈이 뒤덮여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였다.
워낙 눈에 취약한 도쿄이다보니, 사람들은 일찍 퇴근해서 점심먹고 바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아... 나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의 염려도 이제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밖을 살펴보는 것이였다.
이른 아침시간까지도 함박눈은 계속 쏟아지고 있는 것이였다!










저거 봐라....
자전거가 완전 파뭍혀있다!
오늘 날씨 따뜻해서 수영하러 갈까-생각도 있었는데
자전거를 눈속에서 꺼낸들, 길이 저렇게 눈에 파뭍혔으니, 집에 있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는 셈이였다.

그래서 나름 생각하게 되던 것은 내 집 앞에 길은 내야....-_-;;; 앞으로도 좀 밖에 나갈 수 있을 텐데-라는 염려였다.
내가 사는 4가구 주택에서는 그 누구도 눈을 치우지 않기에...
저번 주의 폭설 뒤에서 우리 주택건물에만 눈이 고이고이 잘 모셔져서 자전거 꺼내기도 힘들었던 까닭이다.


헌데, 삽도 없고, 방수 장갑도 없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고무장갑(!)과 세숫대야(!!) 였다.
보아하니, 영상이라 눈이 얼어붙지 않았기에... -_- 해볼만 해 보였고
무모한 눈치우기를 시작했다.
뭐, 나름 30분만에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2층에 올라오는 계단에 걸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자전거도 구출(?)하고,


음하하하. 도로까지 통로도 냈다.
이웃들은 차도까지도 삽으로 퍽퍽 눈을 퍼내며 집 앞의 길도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거 세숫대야로 끼일자리가 아닌듯 싶었는데 -_-;;;;;
 눈 치우며 아픈 허리를 두드리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니, 세숫대야라도 안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함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에헤. 세숫대야 불쌍해보였는지, 이웃분이 삽을 쥐어주시는게 아닌가.
 ㅋㅋㅋㅋㅋ
오예. 그래서 삽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수영이 아니라, 이렇게 삽질로도 운동이 되는구나!
땀뻘뻘 흘리며 치우다보니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하는 도로가 보인다.






아침 일찍부터 눈을 치우시던 이웃집 아저씨는 길까지도 다 치우셨다.
허나 모든 집들이 알아서 집 앞의 눈을 치우는 것은 아니라서...

ㅎㅎㅎㅎ
길에 그대로 눈이 쌓인 곳이 더 많이 보인다만,
이렇게나마... 길을 치우고 나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다음날이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는거였다.





눈치우며, 한 곳에 눈을 몰아서 쌓다보니, 저렇게 사람 키 만한 더미도 쌓인다.

사실 기대치도 않았던 좋은 일은 따로 있다.
그동안 전혀 이야기하기는 커녕, 볼 일도 없었던 이웃 사람들...
그 사람들을 눈을 치우며 만나게 되었는데
언제나,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것은 묘한 동질감을 가져와서 쉽게 친해지게 해주는 법인 듯 싶다.
거기에다 그 분들은 무척 친근한 사람들이여서,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어려운것은 커녕, 큰 호감을 보여주었다는 편이 옳은 듯 싶네.
'외국인 (한국인)', '영어', '우주과학 연구원'이라는 세 가지에 무척 흥미있어하시며 신기해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 (이웃들은 일반비지니스맨, 혹은 가정주부, 병원 등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라, 영어를 쓸 일이 없는 분들이였다.)
내가 천천히 이야기하면 조금은 알아듣는다고 하자, 일부러 천천히, 몸집 손짓 다 쓰며 이야기해주시던 아주머니도 계셨는데, 도움이 필요할때면 언제든 말하라고까지 하신다.
유난히 내가 사는 주택건물의 사람들은 미스테리한건지- 내 건물 입주자들에 대한 궁금증들로 (누가사는 지, 왜 계속 셔터를 내리고 사는지, 얼굴은 봤는지 등등..) 자기들끼리도 한 참 이야기를 나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여기도 그냥.. 평범한 사람 사는 동네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거였다.

또 다른 이웃 아가씨가 자판기에서 따듯한 차를 뽑아 수고하신다며 사람들에게 돌린 덕분에 우리는 휴식시간도 가졌으니!
아하하항~~~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따뜻한 마실거리도 얻어마시고.
이거.... 꽤 괜찮은 눈구경이 된 듯 싶다.

저번주말, 눈 때문에 삿포로 눈축제를 못가서 맺히던 한이 이렇게 여기에서의 폭설(? - 여기 기준으로 이것은 폭설 중 폭설이다. 보통 눈이 와도 몇 센치, 그나마도 다 녹으니까..)로 다 풀리는 구나.





댓글 2개:

  1. 훈훈한데? ㅎㅎ
    갑자기 호빵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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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옹. 나 호빵 만들고 싶다~! 팥앙금이 ... 빵보다 더 많게 듬뿍 담아서... 으히히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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