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7

일본 생활 - 마음가짐 재정리

앞의 글을 쓰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었다.
왜 일본에서의 생활에 힘들어하는 것일까?
그 첫번째 이유라면,  생각하지 못했던 언어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았다는 사실에서였다.
내 그룹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것임을 깨닳은 뒤, 나는 상심에 빠졌었다.
아무리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곳인들... 그들과 의견을 나눌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또한 무엇보다도, 새로운 정보를 얻는 통로로서 세미나에 의존하던 나에게, 일본어로 진행되는 세미나는 절망일 뿐이였다. 왠만한 세미나는 다 참여하던 나였지만, 이제 점차 멀고 먼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두번째 이유라면,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서류 정보가 나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였다. 서류들이 일본어로 되어있고, 물어보면, '아... 일본어로도 복잡한 말이라서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이였으니. 내가 이 부분에서 잘못한 것이라면, 대충이라도 이해를 하고 싶다고 말해서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는 점인데, 나는 지금껏 도와준 것에 미안한 마음에 제대로 의사표현을 안하고 말았다.

내가 여기에서 받는 혜택도 분명히 존재한다.
외국인으로 있다보니, 그룹 내의 '의무'에서 자유롭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위성탐지일을 할 필요가 없기에, 내 시간을 전적으로 나의 일만을 위해 쓸 수 있다. (사실, 그만큼 수당이 줄어들었다만)
일본어를 못하는 덕분에, 왠만한 잡업무가 나에게 돌아오질 않는다.
독일에 비해 세후 월급이 아주 조금 높고 (엔저 덕분에 아주 높은 수준에서, 아주 조금 높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더불어, 이것은 독일에서 세금비율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40%. 여기는 5%)

그렇다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라면, 내가 작년에 일을 찾으며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
'금성'에 대한 일에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였다.
겨우 시작해서, 이제 조금 알만해지는 것 같은데- 여기서 다른 무엇으로 주제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던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래서 찾던 가능성 중, 일본이 단 하나 남은 가능성이였다.


여기에서 판단을 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게 일하지 못한다면 여기를 떠나야하는 것이고, 여기서 좀 더 해보고 싶다면 더 부딪혀 나가야 할 일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인가?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가?

작년, 겨우 박사학위를 마친 나에게 금성은 벌써 떠나기에 아쉬운 주제였다.
아직 많은 의문이 숨겨져 있는 행성.
금성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좀 더 넓힌 뒤, 그 배경지식을 갖고 다른 행성에 대해, 다음 포스트닥 자리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생각을 위해, 나는 훤씬 월급이 적은 포르투갈 정부 지원 프로젝트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지원했었지 않는가.
나에게 일본은.. 그러한 내 소망을 지원해주는 자리였다.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절친을 만들려고 일본에 온 것도 아니고, 엔지니어링의 위성탐지 업무를 하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일본어를 배우려고 온 것도 아니다.
여기에 내가 온 까닭은 1) 금성, 2) 새로운 협력, 3) 새로운 환경, 이라는 삼박자를 위한 것이였다.

자. 이렇게 우선순위를 둔 뒤, 내가 불만스러워 했던 것들을 다시금 살펴본다.
원래 독일에서도 거의 독자적인 연구를 해왔고, 이미 독일에서 왠만큼 유명한 사람들 다 알고 지냈다. 일본에서의 사람들은 아마 구두 보다도- 메일로 더 깊이있는 의견교환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까, 메일이라는 도구를 찾았음에 좀 더 의의를 두고, 일본 과학자들과는 구두보다도 메일에 비중을 두면 어떨까?

그리고 두번째 불만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들어가게 되긴 하겠지만, 정확한 정보를 달라고 여러차례 부탁을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될 지는 몰라도,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된다면 정확하게 의미를 알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몇 달이나 끌려다닐거라면, 차라리 몇 일 내로 종지부를 찍는 것이 나으리라.

내가 온 목적은 연구니까, 그것에만 전념하자.
다른 모든 것들은 부수적이다. 다른 사람들 눈치든, 눈엣가시거리든, 알아듣지 못하겠는 어려운 세미나든, 너무 말 수 없는 연구실의 사람들이든, 혼자 지내든- 말든! 내가 투자하는 장시간만큼, 내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사실 '연구 결과/성과' 하나에 달려있는 거였다.

댓글 4개:

  1. 보기 좋아요. 굉장히 goal-driven! 저도 요즘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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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적을 잠시 상실하고 헤맨듯 싶어요.
      곰곰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깨닳기도 했고,
      이번의 학회들에서 자극 받은 것도 있겠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본 업무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 뿐이네요.
      응원 고마워요, 상록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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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정화 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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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그런것 같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게 아니라, 진짜 행동으로 실천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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